영화 《비커밍 제인》 줄거리, 특징, 총평

 

 

젊은 작가 지망생이 자유분방한 청년과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의 장벽 앞에서 이별하고, 경험을 글 속에 남기는 이야기.

 

1. 영화 개요

제목 : 비커밍 제인  (Becoming Jane)

장르 : 멜로, 로맨스

감독 : 줄리언 재롤드

주연 : 앤 서웨이, 제임스 맥어보이, 줄리 월터스, 매기 스미스

개봉 : 2007년, 영국, 미국, 아일랜드

2. 줄거리

아침 안개가 서린 잉글랜드의 시골 마을.

푸른 들판과 낮은 담장을 지나면 오래된 벽돌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온다.

집 안에서는 젊은 여인이 건반 위에 손을 올린 채, 멜로디보다 자신만의 리듬에 가까운 소리를 쏟아낸다.

그녀의 이름은 제인 오스틴. 아직 무명에 불과한 스무 살 남짓의 젊은 여성이다.

글을 쓰는 일은 그녀의 숨결과도 같았고, 가족은 그녀의 재능을 따뜻하게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걱정한다.

시골 소녀의 재능만으로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인의 아버지는 목사이고, 집안은 지극히 평범하며 풍족하지 않다.

당시 여성이 살아남는 길은 혼인, 그것도 재산과 신분을 보장할 수 있는 혼인이었다.

제인은 결혼으로 삶을 규정당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언어와 상상력으로 세상을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늘 차갑다.

글을 쓰는 여성이라니, 그것은 조금은 괴팍하고, 불필요한 고집으로만 비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무도회에 소란스러운 손님이 나타난다. 아일랜드 출신의 젊은 변호사 지망생, 톰 르프로이.

세련됨보다는 방탕함에 가까운 인상, 거침없는 태도, 그러나 눈빛만큼은 번뜩인다. 제인과 톰의 첫 만남은 충돌에 가깝다.

그는 그녀의 글을 가볍게 비웃고, 그녀는 그가 무례하다며 분노한다.

하지만 그 부딪힘의 불꽃은 곧 강렬한 매혹으로 바뀐다.

 

이후의 시간은 부드럽고도 험난하다. 제인과 톰은 서로의 언어를 자극하며 가까워진다.

제인이 글 속에 담은 위트와 통찰, 그리고 톰의 자유분방한 기질은 둘을 단숨에 연결한다.

그들은 숲 속에서, 마을의 좁은 오솔길에서, 책을 함께 읽으며, 때론 격렬한 언쟁 속에서 점점 더 깊이 서로에게 빠져든다.

제인의 눈빛에는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낯선 빛이 깃든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톰은 가난하고, 가족의 지원 없이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제인의 부모 역시 그 관계를 불안하게 지켜본다. 무엇보다, 제인에게는 부유한 청혼자가 이미 나타나 있었다.

위탁 재산을 물려받은 젊은 귀족, 위스리프 경의 조카 윌리엄. 그는 신분과 재산, 안정된 삶을 모두 보장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부모는 은근한 압박을 가한다.

"문학은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하지만 혼인은 책임진다."

 

제인은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린다. 톰과 함께라면 뜨겁고 진실한 순간을 살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의 불안정한 신분은 두 사람 모두를 벼랑으로 몰 수 있다.

반면, 윌리엄은 따뜻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제인을 존중하며 구애한다.

하지만 제인의 가슴은 단 한 사람, 톰에게만 달려 있다.

 

제인과 톰은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떠날 결심을 한다. 가족의 반대, 사회적 시선, 가난을 무릅쓰고 도망치듯 사랑을 선택한다.

마차에 올라탄 두 사람, 비 내리는 시골길, 그리고 흩날리는 바람. 제인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그 순간, 톰은 결정을 바꾼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버릴 수 없고, 특히 그에게 의지하는 형제와 조카들을 내팽개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이 아무리 강렬해도, 그 사랑이 다른 이의 삶을 짓밟을 수는 없다는 걸 안 것이다.

 

결국 그들의 도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인은 마차에서 내려 혼자 돌아온다.

가슴은 부서졌고, 눈물은 말라붙은 듯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깨닫는다.

사랑의 실패가 곧 삶의 실패는 아니라는 것을.

그 뜨겁고도 불완전했던 경험은 그녀의 글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다.

 

세월이 흐른 후, 제인은 작가로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마주한 톰. 이제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하는 가장이 되어 있었다.

짧은 재회 속에서, 두 사람은 눈빛으로 과거를 확인한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그러나 그 기억은 그녀의 소설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제인은 조카들에게 자신의 원고를 읽어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하다.

 

그토록 원했던 사랑을 얻지 못한 한 여인이

어떻게 글로써 영원을 창조했는가를..

 

 

 

 

 

3. 특징

◐ 전기와 허구의 교차

실존 인물 제인 오스틴의 청춘기를 사실적으로 다루되,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영감을 얻은 허구적 사랑 이야기를 절묘하게 엮어낸다.

실제 삶과 소설적 상상력이 교차하며 한 작가의 형성기를 보여준다.

◐  고전적 미장센

잉글랜드 전원의 풍경, 촛불이 깜박이는 무도회장, 고요한 도서관 등 1818세기말 특유의 정취를 세밀하게 담아내며,

마치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배경을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  여성의 선택과 제약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여성에게 허락된 삶의 선택지가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드러내며, 동시에 그 제약 속에서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제인의 용기를 강조한다.

◐  클래식한 로맨스와 현실성

열정적인 사랑과 현실적인 제약의 충돌을 과장 없이 묘사하며,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앤 해서웨이는 제인의 지적이고 독립적인 면모와 동시에 사랑에 흔들리는 여린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톰을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  사운드와 음악

클래식 현악 중심의 음악은 우아하면서도 절제된 감정을 담아, 인물의 감정선을 부드럽게 따라간다.

음악이 과도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여운을 남기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4. 총평 

'비커밍 제인'은 한 시대의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자유와, 그 자유를 향해 끝내 글로써 싸운 한 인간의 초상을 그린 작품이다.

제인은 사랑을 갈망했으나 그 사랑이 곧 생존을 위협할 수 있음을 직감했고, 결국 현실 앞에서 선택을 거두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순간을 패배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처와 결핍을 문학이라는 언어로 승화시켜,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을 역사에 남긴 원동력으로 재해석한다.

 

영화의 빛나는 부분은 '사랑과 글쓰기의 등가 관계'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제인은 뜨겁게 사랑했기에 더 정직하게 글을 쓸 수 있었고, 사랑을 잃었기에 영원한 언어를 창조할 수 있었다.

실제 삶에서는 실패로 끝난 관계가, 작품 속에서는 수많은 독자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영원한 사랑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눈부신 풍경이나 감각적 연출에 기대지 않고, 인물의 표정과 대화, 침묵 속에 담아낸다.

제인이 펜을 드는 순간마다, 관객은 그녀가 겪은 열정과 상실이 어떻게 문학으로 번역되는지 느낄 수 있다.

 

또한 여성의 자율성을 중요한 화두로 제시한다. 당시 여성에게 결혼은 유일한 생존 수단이자 사회적 인정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제인은 이 틀을 거부했다. 사랑조차도 조건의 언어로 재단되는 현실에서, 그녀는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

그것은 곧 사회적 불안정, 경제적 어려움, 외로움과의 싸움을 의미했지만, 그녀는 그 싸움에서 자신을 잃지 않았다.

영화는 이 점을 감상적인 영웅주의로 그리지 않고, 잔잔한 슬픔과 고독으로 표현한다.

그 덕분에 제인의 선택은 더욱 사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비커밍 제인'의 아름다움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상실로만 남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톰과의 이별은 쓰라리지만, 그것은 제인에게 글의 힘을 부여하는 기원이 된다.

그들의 사랑은 소멸한 것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과 이야기로 재탄생하여, 세기를 넘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문학적 구원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것이, 문학 속에서 가능해지는 기적.

영화는 그 과정을 보여주며, 문학이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삶의 상처를 품고 재창조하는 힘임을 증명한다.

 

스크린 속 제인의 눈빛에서, 그리고 마지막에 글을 읽어주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사랑과 상실, 좌절과 용기가 뒤섞인 인간의 진실을 본다.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제인 오스틴의 글이 살아 있는 이유임을 깨닫게 된다.

 

“사랑을 잃었더라도,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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