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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과 침묵 속에서 길을 잃은 한 여성 감독이, 과거 여성 영화인의 흔적을 복원하며 다시 삶과 예술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영화란 무엇이며 창작이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
1. 영화 개요
제목 : 오마주 (Hommage)
장르 : 드라마
감독 : 신 수 원
주연 : 이정원, 권해효, 탕중상, 이주실, 김호정
개봉 : 2022년, 대한민국
2. 줄거리
낡고 작은 편집실 한 켠, 오래된 필름 상자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다.
그 앞에 앉아 있는 이는 50대 여성 감독 ‘지완’.
한때 여성 감독으로서 주목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신작을 만들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제작사 대표의 전화를 받는 일도, 투자자에게 거절당하는 일도 이젠 익숙하다.
하지만 그렇게 쌓여가는 세월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포기하지 못한다.
그것만이 자신을 지탱해 주는 마지막 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신작은 번번이 무산되고, 주변에서는 “이제는 접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말을 서슴없이 던진다.
남편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아들은 어느새 자신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지완의 삶은 그렇게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과연 옳았는지,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지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오래된 필름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해 줄 수 있느냐는 제안이다.
1960년대 여성 감독 홍은원 감독의 작품 <여판사>의 오리지널 필름이 발견됐는데, 복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영화 현장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기회였다.
설레는 마음보다 두려움이 먼저였지만, 지완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작업을 시작하며 지완은 오래된 필름을 손에 쥐고 숨을 멈춘다.
필름 속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 여성이 사회와 싸워야만 했던 60년대의 공기와 고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녀는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복원하며 마치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때 영화감독을 꿈꾸던 자신의 젊은 날과 마주한다.
복원 과정에서 지완은 단순히 색과 음향을 살리는 일 이상의 것을 경험한다.
홍은원 감독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싸워온 시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당시 여성 감독이었던 홍은원이 얼마나 치열하게 시대와 싸워야 했는지, 그녀가 얼마나 고독하게 카메라를 들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복원에 몰입할수록 지완의 내면은 흔들린다. 지금까지 자신이 만든 영화들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왜 계속 영화라는 세계에 집착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밀려온다.
과거의 여성 감독들이 남긴 흔적은 단순히 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한편, 복원을 진행하면서 지완은 필름 속에서 사라진 장면 하나를 발견한다.
검열이나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 장면은, 당시 여성의 목소리가 어떻게 지워졌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다. 지완은 그 장면을 복원하려 애쓰지만, 남성 동료들은 쓸데없는 일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들의 시선 속에는 여전히 과거와 다르지 않은 여성 감독에 대한 무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지완은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 일을 맡은 이유가 단순히 복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잊혀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다시 세상에 들려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가진 진짜 힘이라는 것을 믿는다.
복원 작업이 끝나갈 즈음, 지완은 다시 카메라 앞에 선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감독으로서의 자신을 다시 깨운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러나 확고하게 새로운 영화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 영화는 과거의 여성 감독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지금의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복원된 필름이 상영되는 날, 지완은 조용히 객석에 앉는다.
스크린 위에 펼쳐진 흑백의 장면들 속에서, 60년 전의 여성 감독과 지금의 자신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대화를 나누는 것만 같다.
“나는 너였고, 너는 나였다.” 그 속삭임이 지완의 마음을 울린다.
영화는 지완이 텅 빈 편집실에 홀로 앉아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는 모습으로 끝난다.
화면 밖으로는 여전히 차가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녀의 눈빛은 다시 살아났다.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붙잡으려는 절박함이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세상과 마주하려는 의지였다.
3. 특징
◐ 영화 속 영화, 시간과 세대의 대화
과거 여성 감독의 작품을 복원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 안에서 또 다른 영화를 다시 쓰는 메타 시네마적 구조를 가진다. 현재의 여성 감독과 1960년대 여성 감독의 시간적 거리를 잇는 장치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세대 간 예술적 연대와 공감으로 작용한다.
◐ 여성 영화인들의 현실과 투쟁을 섬세하게 조명
영화계 내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주변화되는 현실, 잊히고 지워진 여성 감독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을 복원한다는 행위는 곧 여성 서사의 재현이자 역사에 대한 저항이다.
◐ 잔잔하지만 묵직한 리듬과 감정선
신수원 감독 특유의 담백하고 절제된 연출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관객이 스스로 인물의 감정에 스며들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다. 대사보다 시선과 표정, 침묵의 순간이 더 많은 이야기를 말한다.
◐ ‘복원’이라는 행위를 통한 존재의 재확인
필름을 복원하는 일은 곧 과거를 되살리는 동시에 현재를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주인공 지완의 여정은 결국 타인의 이야기를 살리는 일이면서도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다.
4. 감상문
'오마주'를 보고 난 뒤,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천천히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영화가 왜 필요한가 라는 질문이다.
그 답은 아주 오래전, 누군가의 열정과 신념으로 찍힌 한 필름 속에서 조용히 빛난다.
한 여성 감독이 과거의 여성 영화인들의 삶과 열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시 찾고, 잊혀진 목소리를 되살리는 여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 개인과 역사, 예술과 현실을 잇는 다리처럼 펼쳐지며,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지워진 목소리에도 가치가 있다. 잊힌 이들의 시간에도 빛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려는 시도 자체가 곧 예술이며, 저항이며, 삶이라는 것을 잔잔하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보여준다.
지완의 모습은 영화 속 인물이라기보다, 예술이라는 길 위에 선 수많은 창작자들의 초상처럼 느껴진다.
그는 더 이상 젊지 않고, 세상은 자신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제작비는 늘 부족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 기회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영화와 함께 있고, 그 끈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욕망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에게 영화는 삶 그 자체다.
복원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지완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손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잊힌 여성 감독들의 꿈과 목소리, 그들이 남긴 질문들을 다시 현재로 불러오는 일이다.
필름에 스민 시간의 냄새와 먼지를 털어내며, 지완은 자신이 왜 이 길을 택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지를 다시 떠올린다. 그렇게 영화는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지완은 그 거울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한다.
지완이 복원하는 것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지워져온 역사다.
남성 중심의 영화계 속에서 외롭게 싸웠던 여성 감독들의 흔적을 되살리는 일은,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싸우고 있는 자신을 위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것은 연대이며, 기억이며,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복원된 필름이 스크린 위에서 다시 살아 숨 쉬는 장면에서 울컥함이 느껴진다.
오래전 한 여성이 카메라를 들고 세상에 내던졌던 이야기, 그리고 지금 또 다른 여성이 그 목소리를 다시 꺼내어 이어주는 순간.
그 사이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좌절과 침묵이 있었지만, 결국 영화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영화는 단지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단지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갈 힘이 된다.
지완이 다시 카메라를 들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것은 개인의 부활이자 역사와 예술의 계보를 잇는 행위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실패한 감독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야기를 잇는 사람’의 눈빛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예술적 행위, 그리고 누군가를 기억하려는 노력은 결국,
사라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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