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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평생을 한 사람만 바라보며 지켜온 사랑이, 어떻게 삶 전체를 빛나게 하는지를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영화.

 

1. 영화 개요

제목 : 집으로 가는 길 (归来)

장르 : 드라마

감독 : 장예모

주연 : 장쯔이, 손홍뢰, 이빈

개봉 : 2014년, 중국

2. 줄거리

1977, 중국 문화대혁명의 막바지 시기, 어둡고 삭막한 겨울 도시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기차역 플랫폼.

기차가 금속성의 굉음과 함께 천천히 멈추고, 플랫폼에는 사복 공안과 군인들이 바쁘게 오가며 사람들을 감시한다.

흐릿한 회색 톤 화면 뒤로, 긴장감이 가득 흐른다.

 

그 가운데, *펑원(장쯔이)*이 조심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얼굴엔 얼음 같은 두려움과 비밀스러운 희망이 동시에 얽혀 있다.

그녀는 공안의 눈치를 보며 플랫폼 끝에서 한 남자를 기다린다.

그 남자는 바로 그녀의 남편 *루옌스(손홍뢰)*.

반혁명 분자로 몰려 20년 동안 강제노역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최근 탈출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며칠 전, 군인들은 펑원의 집에 들이닥쳐 그녀를 추궁했다.

남편이 너에게 연락했을 것이다.”

어디로 올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려움은 그녀의 몸을 마디마디 조여갔다.

 

기차역에 선 펑원은, 그 모든 공포를 억누르며 남편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날, 루옌스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군인과 공안이 대대적인 검문을 벌이기 시작하고

그 순간 펑원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남편과 너무 닮은 남자의 뒷모습을 본다.

그녀는 뛰듯 달려가 보지만,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기차역 확성기에서 울리는 싸늘한 안내 방송이 그녀의 희망을 산산이 부순다.

 

며칠 뒤, *단단(이빈)*이 학교에서 돌아온다.

단단은 발레를 전공하는 소녀로, 혁명극 주역 배역을 따내기 위해 누구보다 진지하게 일상과 싸우고 있다.

그녀에게 아버지 루옌스는 거의 기억의 바깥에 있는 존재다.

어린 시절 몇 번 얼굴을 본 것이 전부였다.

단단은 어머니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려한다.

아버지의 정치 문제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사라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펑원은 남편의 귀환 소식에 마음이 흔들리고 모든 감정이 뒤섞여 있다.

그녀는 딸에게 조심스레 말한다.

아버지..  돌아올지도 몰라.” 단단은 그 말을 광적으로 거부한다.

그녀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불온한 과거, 정치적 위험 그 자체였다.

 

며칠 후, 군인들이 단단 학교로 와

루옌스가 '탈영자'로 분류되었다며 학생들에게 경계령을 내린다.

단단은 불안해지고, 자신이 주역을 맡기 위해서는

아버지와의 모든 관계를 끊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결국 그녀는 학교 지도원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약속 장소를 일러주고

이 사실은 곧 군 당국에 전달된다.

 

그날 밤, 비밀리에 아버지를 만나려 나온 펑원 앞에

군인들과 공안이 나타난다.

그녀는

내가 말한 게 아니야.. 단단이가라는 말을 끝내 뱉지 못한다.

군인들은 잠복 중이던 루옌스를 체포한다.

펑원은 그 장면을 코앞에서 목격한다.

 

루옌스가 그녀에게 손을 뻗고

원아! 나야나야!” 하고 외치는 순간,

군인들이 거칠게 그를 끌고 간다.

그 광경은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부숴놓는다.

 

시간이 흐르고, 문화대혁명이 종식된다.

정치적 수감자들에 대한 재심이 이루어지며 루옌스는 전격적으로 석방된다.

이번에는 탈출자가 아니라, 억울한 피해자로서 공식적으로 복권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기차역에서 그를 맞이한 것은

아내의 환영이 아닌,

그녀의 공허한, 그리고 어딘지 낯선 표정이었다.

 

펑원은 남편을 보자마자 뒤로 물러서며

당신은누구죠?”라고 묻는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마음속에는 20년 전 체포 당시의 남편 모습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지금 눈앞의 중년 남성이 그녀의 남편일 리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심한 심리적 충격과 외상 후 스트레스로

기억의 일부가 시간 속에 고착되었다.

그녀에게 남편은 수용소로 끌려가기 직전의 그 모습, 그때의 나이, 그때의 얼굴 그대로여야 한다.

루옌스는 충격과 슬픔에 빠지지만 그녀의 상태를 탓하지 않는다.

 

의사는 말한다.

남편분에 관한 기억만 멈춰있습니다.

그날의 충격이 그녀를 한 시점에 묶어둔 것이죠.”

 

루옌스는 길게 한숨을 쉬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20년을 기다렸고,

지금 다시 아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움직인다.

 

그는 조심스럽게 펑원의 일상을 돕고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다시 그녀에게 다가간다.

펑원은 여전히 그를 남편으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낯선 이 남자에 대해 묘한 따뜻함과 신뢰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녀는 이유를 모른 채, 그를 집에 들이고, 밥을 차리고, 일상 대화를 이어간다.

하지만 남편이라는 단어에는 철저히 닿지 않는다.

 

루옌스는 때때로 아내가 자신을 알아보던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슬픔을 억누른다.

그의 눈빛은 늘 젖어 있고 그녀를 향한 손길은 극도로 조심스럽다.

그는 아내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기대하지만

그 기대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한편 단단 역시 후회에 시달린다.

아버지가 잡힌 그날, 자신이 했던 고발어머니의 마음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죄책감과 부끄러움 때문에 아버지와 마주하기 어렵다.

 

루옌스는 딸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단의 발레 연습실을 찾아가 조용히 관람석에서 지켜본다.

딸이 자신을 볼까 두려워 늘 뒤쪽에서, 문틈으로 바라볼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루옌스는 아내의 기억 회복을 포기한다.

대신, 그녀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녀의 곁에서 이웃 같은 존재로 남기로 한다.

그는 매달 아침, 아내가 자신을 찾아 기차역에 가는 습관을 따라가서

그녀가 다치지 않게 멀리서 지켜본다.

 

펑원은 매달 그날이 되면, 어디선가 남편이 돌아온다고 굳게 믿고 기차역에 선다.

그 믿음은 20년 동안 부서진 채 남아 있었던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루옌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는 다시 삶을 버틸 이유가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루옌스는 결심한다.

아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 남편의 모습이 되어 보이기로.

 

그는 당시 입고 있던 옛 군복을 찾고 20년 전 사진을 보며 머리를 다듬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펑원 앞에 선다.

하지만 펑원은 그를 여전히 알아보지 못한다.

 

기억 속 남편의 표정, 목소리, 체취, 모든 것이, 1밀리미터도 달라져서는 안 된다.

중년이 된 루옌스의 모습은 그녀의 시간 속 남편과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그 장면에서 루옌스는

어느 순간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웃는다.

괜찮아요. 이건.. 내가 지켜줄게요.”

 

폭풍처럼 질주한 20. 그는 결국 아내에게 남편이 아닌

아내의 평온을 지켜주는 자가 되기로 한다.

 

펑원은 매달 그랬듯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짐을 천천히 챙긴다.

정확히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버릇으로.

 

루옌스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따라 나선다.

기차역의 계단을 오르는 그녀의 발걸음이 흔들리면

그는 뒷쪽에서 살며시 손을 내밀어 받쳐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손을 남편의 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맙습니다.”

라고 조용히 인사할 뿐이다.

 

기차가 들어오고

펑원은 플랫폼에서 두리번거리며 남편을 찾는다.

예전과 똑같은 눈빛, 똑같은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표정으로.

 

루옌스는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을 가로막지 않도록 몇 발짝 뒤에서 묵묵히 서 있다.

그는 .. 그녀의 기다림을 함께 기다려주는 사람으로

평생 곁에 남기로 한다.

 

카메라는 천천히 멀어지고,

차가운 바람과 함께 플랫폼의 소음이 흐려진다.

 

기차는 멈춰 있고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며

 

남편은 아내의 기다림을 지켜보는 채,

화면은 고요히 어두워진다.

 

 

3. 특징

◐ ‘기다림’이라는 보편적 감정에 집중한 서사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 반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한 여자의 기다림,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사랑의 지속성에 초점을 둔다.

서사는 작지만 감정의 농도는 깊고 섬세하다.

◐  장예모 특유의 서정적 색채와 촬영

장예모 감독은 자연광의 변화, 겨울과 초봄의 색감, 눈보라와 황혼의 공기 등을 이용해

감정의 움직임을 풍경의 변화로 표현한다.

특히 도널드 설랜스가 연기한 노교장의 장례 행렬 장면은

정적인 미장센과 느린 페이스로 관람자의 감정을 한층 고조시킨다.

◐  전통과 기억의 무게를 조용히 드러냄

시대 변화 속에서도 사람이 지키고자 하는 마음의 대물림을 표현한다.

기차가 멈추어 서던 작은 역, 여자가 매일 쌓던 만두, 붉은 목도리의 흔들림 등

모든 사물과 행동이 기억의 아이콘이 된다.

◐  장쯔이의 절제된 연기

장쯔이는 화려한 감정 표현보다 성실한 표정, 손끝의 움직임, 미세한 눈물, 작은 미소 같은

절제된 감정의 기술로 인물을 살아 있게 만든다.

그녀의 연기는 이 영화의 핵심이다.

◐  느림을 허용하는 영화

대사도 적고 음악도 절제되어 있다. 카메라가 오래 머무르고, 인물들이 기다리는 장면이 길다.

하지만 그 느림 덕분에 관객은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기억의 결을 체험하게 된다.

 

4. 감상문 

집으로 가는 길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다.

사랑은 정말 거창한 사건으로 증명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를 위해 묵묵히 같은 자리에 서서,시간을 견디는 그 마음 속에서 빛나는 것일까?

장예모 감독은 후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장쯔이의 작은 눈빛을 통해 그 선택이 정답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기다림이다.

어린 왕치우가, 처음 부임해 온 젊은 교장을 바라보던 그 순간.

부끄러움과 설렘이 한꺼번에 피어오르듯, 장쯔이는 미세하게 떨리는 눈동자로 모든 감정을 말한다.

그 뒤로 이어지는 수많은 기다림. 학교 앞의 흙길, 바람이 부는 들산,

노교장을 마중하러 들판을 달려가는 장면, 이 모든 장면은 사랑의 시간이 어떻게 쌓이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남녀의 이별을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교장이 떠나고, 왕치우는 다시 돌아오길 꿈꾸며, 같은 곳에서 같은 마음으로 기다린다.

기차역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눈이 쌓인 들녘에서도 그녀의 기다림은 슬픔보다도 '순도 높은 희망'에 가깝다.

어떤 잔혹한 운명도 그녀의 마음을 꺾지 못한다.

 

그리고 수십 년 후, 그 기다림의 상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왕치우의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빛깔을 지니고 있다.

아들이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고 마을 사람들은 옛 관습대로 교장을 학교로 모셔 가기 위해

도보 행렬을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왕치우의 표정은 그녀가 얼마나 깊은 사랑을 품고 살아왔는지 말없이 전달한다.

 

이 영화는 전통과 추억이 뒤엉킨 작은 마을의 풍경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지붕 위에서 날리는 붉은 천, 흙벽을 타고 흐르는 겨울빛, 하얗게 얼어 있는 들판.

이 모든 이미지가 왕치우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대변한다.

 

특히 장례 행렬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이 교장을 들것에 모시고 학교까지 몇 시간 동안 걸어서 데려가는 그 느린 여정.

그 길은 마치 한 남자의 생애를 되짚는 길이자, 왕치우가 살아온 사랑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여정처럼 보인다.

걷기만 하는 장면임에도 그 속에는 이 영화 전체가 담겨 있다.

 

집으로 가는 길아름답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영화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대단한 사건이 없어도, 사랑은 오래 남을 수 있다는 사실.

기다리는 마음, 기억을 간직하는 마음,

그 단순한 진실을섬세하게 표현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기차가 서던 작은 시골역, 왕치우가 매일같이 동구 밖 언덕에 서 있던 모습,

붉은 스카프가 바람에 나부끼던 그 장면이 눈 앞에서 계속 소리 없이 되풀이된다.

마치 오래전에 읽은 시 한 편이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떠오르듯이.

 

집으로 가는 길은 결국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사람의 몸은 떠나지만

그를 기다렸던 마음, 그를 믿었던 마음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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