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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예술과 현실이 뒤엉킨 두 경극(노래와 춤이 섞인 중국 전통극) 배우가, 시대의 폭력과 서로의 집착 속에서 파괴되어 가는 비극의 여정을 그린 작품.

 

1. 영화 개요

제목 : 패왕별희 (Farewell My Concubine)

장르 : 드라마

감독 : 첸카이거

주연 : 장국영, 공리, 장풍의

개봉 : 1993년, 중국

 

2. 줄거리

베이징의 겨울 새벽, 얼음이 낀 거리 위로 차가운 공기가 깔린다.

어린 청더이(후에 장국영이 연기하는 데이)의 손을 거친 채, 거친 여인에게 떠밀려 경극 학당의 문 앞에 서게 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청더이의 어머니는 아편 중독자이며 창녀다.

그녀는 아들에게 나는 남자입니다라는 대사를 억지로 외우게 시킨다.

하지만 청더이의 입에서는 끝내 여자입니다라는 말이 부드럽게 흘러나온다. 이 작은 말 한마디가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여인은 아이를 경극 학당에 맡기기 위해 남자아이임을 증명해야 했고, 결국 그 한마디는 아이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경극 학당은 혹독하다. 아이들은 맞으며 노래를 배우고, 매일 새벽 같은 동작을 수백 번 반복한다.

채찍 소리, 교관의 외침, 아이들의 울음이 뒤섞인 풍경 속에서, 청더이는 ‘()’ 역, 여자 역할을 맡게 된다.

청더이의 가늘고 부드러운 목소리, 긴 눈매는 그 역할과 잘 어울렸다.

그는 억눌린 환경 속에서 점차 여인의 몸짓과 감성을 흡수하며 자란다.

 

그 학당에서 청더이의 유일한 버팀목은 소년 스지(후에 장풍의가 연기하는 쉬샤오루)였다.

스지는 외유내강한 성격으로 청더이를 보호한다. 혹독한 훈련 속에서도 스지는 청더이가 맞지 않도록 몸을 밀어 넣고, 그의 울음을 닦아주고, 밤에는 몰래 따뜻한 말들을 건네며 함께 버틴다.

둘은 친구를 넘어 서로의 세계가 된다.

 

시간이 흐르고, 청더이는 ‘배왕(패왕)’의 연인 역 우희역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며, 스지는 패왕역의 배우가 된다.

두 사람은 무대 위에서 완벽한 합을 보여주며 베이징 최고의 경극 콤비가 된다.

무대에서 스지는 칼을 세우며 패왕의 기개를 연기하고, 청더이는 고운 몸짓으로 사랑과 절망을 오간다.

연극이 끝날 때마다 청더이는 현실과 무대를 구분하지 못한 듯 스지를 바라본다.

패왕만이 우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 대사는 무대를 넘어 그의 마음 깊은 곳의 진심으로 남는다.

 

그러나 스지는 공리가 연기한 아름다운 창기 주셴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청더이는 스지가 자신을 떠난 것처럼 느끼며 가슴 깊은 곳에서 비틀린 상실감을 겪는다.

그는 무대 밖에서도 우희로 살아온 탓에 스지에 대한 감정을 사랑과 의존 사이에서 혼동하게 된다.

스지가 주셴에게 마음을 내주자 청더이는 감정이 폭발하고, 술과 아편에 의존하게 된다.

 

시대는 혼란스럽다. 전쟁, 일본군의 점령, 해방, 국공 내전, 그리고 문화 대혁명이 연달아 베이징을 휩쓸어 간다.

경극단도 시대의 풍랑 속에서 미끄러진다. 청더이와 스지는 서로를 붙잡으려 하지만 상황은 그들을 계속 분리시킨다.

 

일본군이 베이징을 점령했을 때, 이들은 친일 협력자로 몰린다.

두 배우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연을 이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는다.

조사 과정에서 청더이는 절망 끝에 자신과 스지의 관계를 왜곡된 방식으로 증언해 버리고, 그로 인해 둘의 관계는 더 깊게 금이 간다.

 

이후 문화 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영화는 가장 잔혹한 장면을 담아낸다.

젊은 홍위병들이 거리로 몰려다니며 반동분자들을 고발하는 시대.

한때 베이징의 별이었던 청더이와 스지는 무대에서 끌려 내려와 비판투쟁을 당한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예술을, 스승을, 서로를 모두 부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포효에 가까운 고발 속에서 스지는 살아남기 위해 아내 주셴을 창기 출신의 반동분자라고 말한다.

주셴은 눈물로 남편을 바라보지만, 그녀 역시 스스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결국 주셴은 모욕적인 고문과 멸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청더이는 이 장면을 지켜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무너져 내린다.

스지를 향한 사랑과 증오, 예술을 향한 절망이 뒤얽힌 채.

 

시간이 지나 혁명은 끝나고, 두 배우는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된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무대는 여전히 그대로다.

청더이와 스지는 다시 옛 연극 <패왕별희>를 공연한다. 무대는 조용하고, 조명이 켜지며 두 사람은 다시 패왕과 우희가 된다.

칼을 쥔 손, 우희의 고운 소매, 서로를 향한 눈빛, 그 순간만큼은 과거의 시간들이 모두 되살아난 듯 숨결이 이어진다.

 

그리고 절정의 장면.

우희 역의 청더이는 극 속의 대사 그대로 패왕님, 소첩은 당신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실제로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눈다. 스지는 그 장면을 보며 모든 과거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무대와 현실이 혼재된 순간, 청더이는 숨을 거둔다.

그의 마지막은 우희였고, 그의 평생의 사랑과 절망 역시 스지였다.

 

스지는 무대에 홀로 남아 칼을 든 채 얼어붙는다.

연극은 끝났고 과거와 현재,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무엇도 붙잡지 못한 채, 조용히 무너진다.

 

 

3. 특징 

◐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붕괴되는 서사

영화는 경극 속 패왕과 우희의 관계가  현실의 데이와 스지의 삶과 거울처럼 겹치는 구조를 갖는다.

무대 위에서의 배역은 결국 둘의 삶이 되고, 청더이는 우희로서의 정체성을 지울 수 없을 만큼

예술과 현실이 뒤섞여 버린 인물로 그려진다.

◐ 시대의 폭력 속에서 파괴되는 인간과 예술

군벌 시대 일본군 점령 국공내전 문화 대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 현대사의 격랑은 두 배우의 인생을 집어삼킨다.

영화는 시대가 한 인간의 예술, 사랑, 자존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 장국영의 압도적 내면 연기

장국영이 연기한 청더이는 여성적 섬세함과 남성의 절망, 예술가의 광기와 인간의 취약함이 한 몸 안에 뒤엉킨 복합적 캐릭터다.

그의 눈빛·호흡·몸짓은 영화 전체를 이끄는 핵심이다.

◐ 주제의 상징화 칼, 경극,  우희’

칼은 끝내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관통하는 죽음과 해방의 상징이다.

경극은 두 주인공이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이며, 우희는 청더이의 존재이자 그의 사랑,굴레,자기 파괴의 기호다.

◐ 압도적 미장센과 중국 전통 색채

첸 카이거 감독은, 붉은 무대 장막, 화려한 의상, 눈발이 흩날리는 베이징의 거리 등

상징적 색감과 광활한 화면 구성을 통해, 삶의 비극성과 예술의 찬란함을 동시에 구축한다.

 

4. 감상문 

패왕과 우희의 비극적 결말은 그들 두 사람의 인생이자,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치며 시대의 폭력 속에 짓눌려 살아야 했던 예술가들의 운명이었다.

예술을 삶의 전부로 삼았던 한 인간의 '투명한 절망'을 담고 있다.

 

청더이의 인생은 시작부터 고통 위에 세워진다.

어린 시절부터 강요된 우희라는 정체성, 사랑의 대상이자 삶의 버팀목이었던 스지에 대한 감정,

그리고 시대의 폭력이 그의 모든 것을 찢어놓는다.

 

가슴 아픈 장면은 청더이가 예술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흔들릴 때.

무대에서 그는 언제나 패왕만이 우희를 지킬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스지는 결국 우희를 지키지 못한다.

 

스지는 주셴을 선택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청더이를 밀어낸다.

청더이는 그 순간부터 자신이 무대 밖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그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절절한 우희.

이 모순된 자아는 그의 마음을 갈라놓는다.

 

그의 아픔 중 상당수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다.

스지는 그에게 친구였고 형제였으며 마지막 남은 세계였다.

그러나 시대의 고문, 배신, 생존을 위한 타협은 스지의 마음마저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결국 둘의 관계는 사랑, 의리, 질투, 증오가 뒤섞인 채 무너진다.

 

문화 대혁명 장면은 영화 속 가장 잔인한 순간이다.

예술가는 예술을 부정해야 살고, 남편은 아내를 고발해야 하며, 친구는 친구의 목을 조여야 한다.

 

그 무자비한 장면에서 청더이는, 스지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끝내 그녀가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바라본다.

그는 시대의 잔혹함이 사람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목격한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에서 청더이를 무대 위로 되돌려 보낸다.

예술은 그가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고, 그의 삶이 깨어지는 동안에도 오직 무대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그는 우희로서 마지막을 맞이한다.

 

스지와의 관계를 비극적으로 반복하는 바로 그 장면에서,

청더이는 연기와 현실의 경계를 칼 한 자루로 끊어낸다.

그 순간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짜 우희'가 된다.

 

청더이가 죽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그의 삶 전체가 그저 하나의 연극처럼 느껴진다.

그는 죽기 전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소유해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학당에서 강요된 배역, 시대가 부여한 오욕,

사랑했던 사람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 마음.

그는 끝내 청더이가 아닌 우희로서 살아내야 했다.

 

 

예술이 인간을 어떻게 살리고, 또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그 양면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패왕별희는 감정을 자극하는 서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예술에 몸을 바친 인간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찢기고 휘발되는지를 담담히 바라보는 기록이며,

동시에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꺼지고 난 뒤에도, 스지가 무대 위에서 얼어붙은 채

칼을 든 손을 떨고 있는 모습이 오래 남는다.

 

패왕이 우희를 잃었듯, 스지는 청더이를 잃었다.

이 비극은 단지 연극의 한 장면이 아니라

두 사람의 전 생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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