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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오사지족 학살의 비극을 통해, 인간의 양심이 어떻게 서서히 썩어가는지를 장엄하고도 슬프게 응시한 기억과 죄의 서사시
1. 영화 개요
제목 : 플러워 킬링 문 (Killers of the Flower Moon)
장르 : 범죄
감독 : 마틴 스코세이지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 로버트 드니로
개봉 : 2023년, 미국
2. 줄거리
미국 오클라호마, 1920년대 초. 광활한 평원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그 바람 속에서 석유 냄새와 피 냄새가 뒤섞인다.
오세이지 인디언들이 거대한 부를 손에 쥐고 살아가던 그 시대, 세상은 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했다.
하얀 셔츠를 입은 백인 남자들과 깃털 장식을 한 인디언 여인들이 같은 거리에서 어울리지만, 그들의 눈빛은 결코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후, 어딘가 허름한 기차에서 '어니스트 버크하트'가 내려선다.
얼굴에는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고, 어딘가 허망한 표정이 떠돈다.
그는 삼촌 윌리엄 헤일의 초청으로 이 오세이지 땅, 페어팩스에 도착한다.
겉으로 보기엔 친절하고 따뜻한 삼촌이지만, 그의 웃음은 어딘가 기름 냄새처럼 미끄럽다.
“이 땅은 기회의 땅이야, 어니스트. 사람만 잘 보면 부자가 되는 건 한순간이야.”
그 말은 축복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저주였다.
오세이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석유를 발견했고, 그 덕분에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재산은 정부의 제도로 인해 백인 후견인의 관리 아래 놓여 있었다.
하얀 사람들은 웃으며 그들의 돈을 관리하고, 동시에 그들의 삶을 조용히 잠식해 들어갔다.
어니스트는 그 사실을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 척했다. 그는 단지 삼촌의 말에 따르고, 돈을 좇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는 한 여자를 만난다. 몰리.
조용하고 품위 있는 오세이지 여인, 검은 눈동자 속에 강인함과 슬픔이 함께 서려 있었다.
마차에 탄 그녀를 태우고 집으로 가는 길, 어니스트는 그녀의 침묵 속에서 이상한 평온함을 느낀다.
“당신 웃는 모습이 참 좋네요.” 그는 어색하게 말하지만, 몰리는 미소 짓지 않는다. 대신 부드럽게 그를 바라보며 묻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죠, 어니스트?” 그는 대답하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둘은 결혼한다. 축하의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춤을 춘다. 그러나 그 축제의 공기 속에는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밤하늘에 떠오른 불빛은 폭죽이 아니라 석유의 불길이었다. 오세이지 사람들의 죽음이 하나둘씩 이어진다.
독살, 총격, 폭발, 모두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들로 치부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명확한 의도가 있었다.
그들의 재산을 빼앗기 위한 조직적인 살인.
윌리엄 헤일은 마을의 왕처럼 군림했다. 그는 인디언들을 위해 기부를 하고, 그들의 장례식에 참석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그는 냉정한 계산을 했다. 누가 죽으면 누가 상속을 받고, 그 상속자는 누구의 관리 아래 들어가는가, 모든 것은 숫자와 관계의 문제였다. 어니스트는 삼촌의 지시를 따랐다.
“몰리의 가족 중 누가 먼저 가도 상관없다. 다 계획된 거야.”
삼촌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몰리의 얼굴이 떠올라 잠들지 못했다.
몰리의 가족이 하나둘 세상을 떠난다. 언니가 독살당하고, 또 다른 가족이 폭발로 사라진다.
마을 전체가 두려움에 잠기고, 경찰은 무능하거나 부패했다. 몰리는 점점 병들어간다.
그녀의 혈관 속에는 삼촌이 조용히 주입한 독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를 위해 준다는 약이, 사실은 죽음을 서서히 불러오는 약이었다. 어니스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한다. 돈과 사랑 사이에서 그는 무너진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녀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몰리는 눈이 깊게 들어간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당신.. 나한테 진심이었나요?” 그 말에 그는 대답하지 못한다.
말 대신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은 너무 늦은 후회의 증거였다.
결국 외부에서 수사관들이 들어온다. 젊은 FBI 요원들이 처음으로 이 마을에 도착해,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죽음의 연쇄가 우연이 아님이 드러나고, 헤일 일가는 점점 포위된다. 어니스트는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다.
수사관은 묻는다. “당신은 아내를 사랑했습니까?” 어니스트는 고개를 숙인다.
“예, 사랑했습니다.” “그럼 왜 그녀를 독살했습니까?” 그의 입술이 떨린다.
“그건… 명령이었어요.” 그러나 그 말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팔았고, 그 대가로 남은 것은 죄책감뿐이다.
법정에서 몰리는 그를 바라본다. 여전히 조용하지만, 그 눈빛에는 더 이상 사랑이 없다.
그저 냉정한 현실과,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있을 뿐이다. 어니스트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한다.
그는 그저 자신이 파괴한 모든 것 앞에서 무너질 뿐이다.
세월이 흘러, 사건은 신문에 짧은 기사로 남는다.
‘오세이지 살인사건, 백인 일가의 범죄.’ 사람들은 곧 잊는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이 사건을 마치 하나의 흥미로운 범죄극처럼 재연한다.
노인이 된 어니스트는 관중석에 앉아 라디오를 듣는다. 눈은 흐릿하고, 손에는 떨림이 있다.
방송이 끝나자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화면은 페어팩스의 들판으로 넘어간다.
석유는 여전히 솟구치고, 검은 액체가 땅을 적신다.
그 위로 오세이지의 전통춤이 울려 퍼진다.
여인들의 얼굴에는 강인함이 새겨져 있다.
그들은 빼앗겼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대지 위에 남아 있다.
어니스트의 죄와 몰리의 고통, 그리고 이 땅의 침묵이 한데 뒤섞인 그 시대.
'플라워 킬링 문'은 바로 그 피와 석유로 얼룩진 미국의 초상을, 냉정하게 그려낸다.
석유 냄새 속에서 아직도 들린다. 몰리의 낮은 목소리.
“우린 잊히지 않을 거예요.”


3. 특징
이 영화는 침묵의 윤리로써 미국의 역사적 죄책을 고발한다.
1920년대 오클라호마 오사지족 학살 사건을 다루며, 범죄 스릴러의 긴장감보다 시간의 무게, 인간의 탐욕, 사랑의 왜곡을 천천히 응시한다.
스코세이지 특유의 도덕적 응시의 카메라가 빛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나누지 않는 대신 인간의 얼굴, 특히 어니스트의 혼란과 자기기만을 통해 악의 구조가 얼마나 일상적인지를 보여준다. 또한 몰리의 시선은 영화의 윤리적 중심이 된다.
그녀의 침묵은 단순한 수동성이 아니라, 역사를 견디는 강인함의 형태다.
음악은 북미 원주민 리듬과 블루스의 교차를 통해 땅의 슬픔과 신의 부재를 공명 시킨다..
광활한 초원을 한 폭의 회화처럼 담으며, 인물의 내면적 죄의식과 맞닿는다.
또 하나의 특징은 FBI의 정의마저도 구원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실이 밝혀져도 상처는 남고, 희생자들의 이름은 기록 속에만 남는다.


4. 감상문
바람이 지나간 자리, 밤하늘 아래 계단처럼 누워 있는 암석, 그리고 묵묵히 서 있는 기름 굴착기.
그것은 단지 풍경이 아니다. 그 속엔 피로 채워진 권리의 망각이 있고, 살인으로 측정된 부의 그림자가 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잊고 있는 역사는 얼마나 깊은가?
우리가 바라보지 않았던 땅 위에는 어떤 슬픔이 묻혀 있는가?
'플라워 킬링 문'은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조용히 신을 죽이는가에 대한 묵시록이다.
초원의 고요함 속에는 총성보다 더 큰 울음이 숨어 있다.
오사지족의 얼굴에 비친 그늘, 햇살 아래 번들거리는 기름, 그리고 그 위로 무심히 날아가는 새 한 마리, 스코세이지는 이 모든 것을 이용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진 토양의 죄를 고백한다.
몰리의 눈동자는 이 영화의 영혼이다. 그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엔 신의 목소리가 있다.
남편 어니스트가 독을 조금씩 섞은 약을 건넬 때, 그녀의 눈은 사랑을 믿고 싶어 하는 마지막 인간의 눈이었다.
그 믿음이 배신으로 무너질 때조차 그녀는 원망 대신 눈물을 삼킨다.
그 장면은 마치 성모의 침묵처럼, 인간이 견디는 방식의 존엄을 보여준다.
스코세이지의 영화는 언제나 죄와 구원을 다뤘다. 그러나 이번엔 더 이상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이라는 형태의 구원을 남긴다.
라디오 드라마 형식의 재현 장면에서 모든 사건이 가벼운 오락처럼 소비되는 순간, 숨이 막힌다.
그것은 단지 과거의 일화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인간의 무감각에 대한 냉혹한 거울이다.
영화는 잿빛 초원 위에 묵직한 침묵을 남긴다.
그건 단순히 영화의 여운이 아니라, 역사의 잔향이다.
아름다움과 비극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그리고 인간의 손이 닿은 모든 부가 결국 피를 스며들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온의 밑바닥에는 누구의 죽음이 깔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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