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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신앙과 혈통기억과 죄의 경계에서 한 여인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침묵의 여정이자, 인간의 존재와 구원을 응시한 영화.

 

1. 영화 개요 

제목 : 이다 (Ida, 2013)

장르 : 드라마, 로드 무비

감독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주연 : 아가타 트셰부호프스카, 이가타 쿠레샤

개봉 :2013년, 폴란드, 덴마크

2. 줄거리

폴란드의 겨울. 한낮인데도 세상은 이미 어둠 속에 잠긴 듯하다.

작고 낡은 수도원의 마당 한가운데, 흰 머리에 회색 수도복을 입은 수녀들이 서 있다.

그들 사이에, 어린 수련 수녀 하나가 서 있다. *이다(안나)*.

그녀의 눈빛은 맑지만, 어딘가 결여되어 있다. 마치 아직 자기 자신을 만나지 못한 사람처럼.

 

그녀는, 곧 서원을 앞둔 수녀 지망생이다.

수도원 밖 세상은 그녀에게 낯설고 두렵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어렴풋이 무언가를 아직 모르고 있다는 불안이 흐른다.

 

서원 전날, 원장은 조용히 말한다.

안나, 서원을 하기 전 네 가족을 찾아가거라. 네가 누구인지 알아야 해.”

그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눈 내린 도로를 걸어 나선다.

그리고 수도원을 처음 벗어난다.

 

도시로 향하는 버스 안. 이다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담배 연기, 거친 음악, 시끄러운 대화들, 수도원의 침묵과는 너무 다른 세상.

그녀의 흰 얼굴은 차창에 비쳐, 세상의 색을 잃은 한 점의 그림처럼 보인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Wanda*

냉소적인 미소를 지닌 중년 여성, 술과 담배 냄새로 둘러싸인 검사 출신의 여인이다.

그녀는 이다의 유일한 혈육, 고모였다.

 

문을 열자마자, 완다는 시선을 흘리며 묻는다.

그래. 수도원에서 왔다는 그 아이가 너냐?” 이다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완다의 입에서한 줄기 번개 같은 진실이 떨어진다.

 

 “, 유대인이야. 본명은 이다 라이벤슈타인, 네 부모는 전쟁 중에 죽었어.”

 

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얼굴엔 놀람도, 눈물도 없다.

그저 그 말이 어디쯤 들어가 멈춰버린 듯, 고요히 가라앉는다.

 

며칠을 함께 보내며, 완다는 조카를 데리고 그들의 과거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오래된 시골 도로, 버려진 농가, 사람들의 회피하는 시선들.

그들은 전쟁의 그림자 속을 걸어간다.

1940년대, 나치 점령기의 기억이 아직도 그 땅의 흙 속에 살아 있다.

 

한 집의 문을 두드린다. 늙은 농부가 문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라이벤슈타인 가족이 여기 살았지?” 완다가 묻는다.

그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문을 닫는다. 공기가 얼어붙는다.

잠시 후, 그는 그들을 따라 숲으로 향한다.

낙엽이 쌓인 깊은 숲 속, 그 남자는 입술을 떨며 손으로 땅을 가리킨다.

여기요..

 

이다와 완다는 눈으로 서로를 본다.

삽이 흙을 파내는 소리, 거친 숨소리. 그리고 그 밑에서, 작은 뼈들이 드러난다.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그녀의 어린 동생.

이다는 무릎을 꿇고, 손끝으로 차가운 흙을 쓸어낸다. 그녀의 눈은 움직이지 않는다.

완다의 눈에서는, 말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날 밤, 완다는 술에 취해 울부짖는다.

그들은 유대인이라 죽었고, 나는 공산당이라 살았지. 그게 세상이야, 이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

이다는 말없이 듣는다.

그녀는 고모의 방에서 트럼펫 소리를 듣는다. 한 젊은 음악가가 연습하는 소리.

그 소리는, 이다에게 처음으로 삶의 소리처럼 들린다.

그녀는 문을 열고 그를 바라본다. 젊은 남자, 리사드.

그의 눈빛에는 따뜻한 호기심이 있다.

 

다음날, 이다와 완다는 부모의 유골을 묘지에 묻는다.

작은 나무 십자가 하나만이 그 자리를 표시한다.

기도를 올리는 이다의 손은 고요하지만, 그 속에는 무언가가 깨져나가는 진동이 있다.

 

며칠 후, 완다는 홀로 아파트 창가에 선다. 그녀의 눈엔 더 이상 힘이 없다.

세상에 남은 건 공허뿐이다. 그녀는 천천히 창문을 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몸을 기울인다. 조용한 바람 소리와 함께, 그녀의 코트 자락이 휘날린다.

그녀는 그렇게 사라진다.

 

이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온다. 창밖에서 올라오는 경찰의 사이렌 소리,

고요한 방 안에 남은 완다의 구두 한 짝.이다는. 침대 끝에 앉아, 그녀의 방을 바라본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을 본다.

수도원의 안나도 아니고, 유대인 이다 라이벤슈타인도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자신.

 

며칠 뒤, 이다는 수도복을 벗고 완다의 옷을 입는다.

굽이 높은 신발, 진한 립스틱, 흰 목덜미 위로 느껴지는 낯선 공기.

그녀는 그 옷으로 완다가 즐겨 찾던 재즈바에 간다.

리사드가 트럼펫을 불고 있다. 그의 음악은 자유롭고, 슬프고, 살아 있다.

 

그들은 함께 걷고, 대화를 나눈다.

그럼, 수도원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죠?”

이다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미소 짓는다.

아마도.. 모르겠어요.”

 

그 밤, 그녀는 리사드의 방에 머문다. 처음으로, 한 남자의 품에서 따뜻한 숨을 느낀다.

아침이 오고, 그는 말한다.

우리 함께 살아요. 여행도 하고, 음악도 듣고이다는 천천히 그를 본다.

그의 눈 속에는 삶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이미 세상 너머의 고요가 번지고 있다.

 

그녀는 옷을 입고, 아무 말 없이 떠난다.

길 위에는 빛이, 그리고 먼지가 일렁인다.

 

이다는 다시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처음과 다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신의 자비 아래서가 아니라,

세상의 잔혹함 속에서도 존재하는 자신으로서.

 

그녀는 말없이 길을 걷는다. 바람이 코트를 스친다.

화면은 고요히 흔들리며,

그 흑백의 세상 속에서 이다의 얼굴이 서서히 사라진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만 남는다.

 

3. 특징

◐ 흑백의 침묵 미학

'이다'는 흑백으로 촬영된 영화다. 그 흑백은 단순한 색감이 아니라, 기억의 잔상 그 자체다.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은 시대적 현실, 전후 폴란드의 회색빛 잿더미말이 아닌 색의 부재로 표현한다.

화면에는 종종 인물이 프레임 아래쪽에 작게 위치한다. 하늘, , 여백이 인물을 덮어버린다.

이 독특한 구도는 인간이 역사의 무게 아래 얼마나 작고 덧없는 존재인가를 보여준다.

 

◐  침묵과 절제된 감정의 언어

이다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의 감정은 대사보다 멈춤시선으로 표현된다. 말이 아니라 침묵의 리듬으로 흐른다.

관객은 그 고요 속에서, 인물의 내면을 스스로 읽어내야 한다.

그저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  정체성과 신앙의 질문

이다는 신을 믿는 수녀로서, 동시에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출생의 진실을 마주한 사람이다.

그녀는 신앙과 혈통, 순수와 죄, 신의 사랑세상의 잔혹함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 갈등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진실 앞에서 얼마나 외로워지는지를 보여준다.

 

◐  폴란드의 역사와 개인의 고백

영화 속 배경은 1960년대 폴란드, 전쟁의 상처와 공산정권의 냉기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대이다.

이다의 고모 완다는 과거 공산당 검사였고, 유대인 학살의 생존자다.

그녀는 체제 속에서 살았지만, 그 체제가 그녀를 구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자살은 그 시대의 죄의식이 낳은 마지막 고백처럼 느껴진다.

 

 

4. 감상문

'이다' 말보다 침묵이 많은 영화.

감정의 폭발 대신, 얼어붙은 얼굴과 무표정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상처를 보여준다.

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서 신앙과 정체성, 죄책감과 구원의 경계에서 흔들린다.

 

정지된 듯한 흑백의 화면, 여백이 많은 구도, 거의 들리지 않는 대사를 통해 기억과 존재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다가 걸어가는 길 위에는 눈처럼 차가운 현실과,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존엄이 남아 있다.

 

모든 색이 사라지고, 남는 것은 빛과 그림자, 그리고 숨결 하나. 그 속에서 한 소녀가 묻는다.

나는 누구입니까?”

그 질문은 단지 이다의 것이 아니라,

전쟁과 신앙, 그리고 인간의 기억을 짊어진 모든 존재의 물음이다.

 

이다는 침묵으로 걷는다. 그녀의 걸음은 기도이자 방황이다.

그녀가 지나가는 폴란드의 들판과 숲은 과거의 무덤이자, 진실의 유적이다.

눈 덮인 땅을 파헤치며 부모의 뼈를 발견하는 장면은 마치 인간이 자기 존재의 뿌리를 찾기 위해

세계의 냉기를 맨손으로 뒤집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고모 완다는 세상의 목소리다.

그녀는 술과 냉소로 자신을 견디지만, 그 속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번져 있다.

그녀는 이다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자신은 창문 밖으로 사라진다.

그녀의 죽음은 비극이라기보다, 스스로의 과거와 화해할 수 없던 한 인간의 귀향처럼 보인다.

 

이다는 남겨진다. 그녀는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수도복을 벗고 립스틱을 바르며 잠시 살아 있는 여자가 되어보지만,

그 경험조차 그녀에게는 신앙처럼 고요하다.

 

사랑은 가능했지만, 그녀는 사랑보다 진실을 택한다.

그 진실이 곧 그녀의 고통이고, 구원이었다.

 

이다가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가는 그 긴 숏. 그녀의 발걸음은 느리지만 확고하다.

그 얼굴엔 눈물도 미소도 없다.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인 얼굴.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마주한 순간의 얼굴이다.

그 길 위에는 구원의 빛도, 절망의 그림자도 없다.

오직 삶 자체가 있다.

 

 

'이다'는 그런 영화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이, 수많은 말보다 더 깊이 가슴을 울린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말을 잃는다.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귓가에 남고,

그 길이 어쩐지 자신의 내면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신에게 가는 길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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