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래전 집을 떠났던 아버지와 두 아들의 짧고 낯선 재회를 통해 가족의 부재와 권위, 그리고 성장의 아픔을 그린 이야기.
1. 영화 개요
제목 : 리 턴 (Возвращение, The Return)
장르 : 드라마
감독 :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주연 : 블라디미르 가린, 이반 도브론라보프
개봉 : 2003년, 러시아
2. 줄거리
영화는 잿빛 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바람이 스산하게 스쳐 지나가는 어느 작은 항구 도시.
화면에는 낡은 집과 물에 젖은 골목길, 그리고 방치된 듯한 놀이터가 비친다. 두 소년, 안드레이와 이반이 등장한다.
이들은 형제지만 성격은 극과 극이다. 형 안드레이는 차분하고 조숙한 반면, 동생 이반은 반항적이고 날카로운 기운을 품고 있다.
이들의 삶은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손에 의해 유지되어 왔고, 아버지는 오랫동안 부재중이었다..
그 빈자리는 막연한 그리움과 동시에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낯선 기운이 감돈다. 오래도록 소식 없던 아버지가 불쑥 돌아온 것이다.
무뚝뚝하고 거칠지만 묘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아버지의 존재는 두 형제의 세계를 송두리째 흔든다.
그는 따뜻한 포옹도, 반가움의 눈물도 없다. 마치 오랫동안 그저 잠시 자리를 비웠던 듯,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설명되지 않은 긴 공백이 무겁게 깔려 있다.
아버지는 갑자기 두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겠다고 말한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다.
형제는 혼란스럽지만 호기심과 두려움 속에 따라나선다. 낡은 차에 몸을 싣고, 황량한 러시아의 풍경을 가로지르는 여정이 시작된다.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마다 차는 요동치고, 창밖에는 무한히 펼쳐진 숲과 호수, 회색빛 하늘이 이어진다.
이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세 남자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이해해야 하는 시험 같은 시간이 된다.
길 위에서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권위적인 태도를 보인다. 말을 아끼고, 질문에는 짧은 대답만 하며, 종종 무심한 명령을 내린다.
안드레이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르려 하지만, 이반은 반발한다.
아버지의 존재는 그에게 너무 낯설고, 그간 쌓였던 공백의 세월이 한순간에 메워질 수는 없었다.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형은 동생을 달래며 두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그러던 중, 그들은 외딴 호수 근처에 도착한다. 끝없이 고요하고, 주변에는 인적 하나 없는 곳이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낚시를 하고, 무언가를 찾아 나서며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의 행적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목적이 분명치 않은 움직임이 계속된다. 아이들은 점점 불안해진다.
특히 이반은 아버지와 충돌을 피하지 않는다. 그의 거친 손길과 고압적인 태도에 반발하며 울분을 토로한다.
아버지는 그런 이반을 거칠게 다루기도 하고, 때로는 무심하게 내버려 두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미묘한 감정이 감돈다.
오랜 세월 부재했던 아버지가 지금에서야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는 듯한, 그러나 이미 때늦은 듯한 어긋남이 계속된다.
결정적인 사건은 호수의 한 섬에서 벌어진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작은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무거운 상자를 파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끝내 보여주지 않는다.
그 미스터리는 영화의 핵심적인 불가해로 남는다.
아이들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특히 이반은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극한의 반발심을 드러낸다.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반은 아버지와 격렬히 말다툼을 벌이고, 아버지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다.
바로 그 순간,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다그치던 중 발을 헛디뎌, 배에서 떨어지고 만다.
바다에 빠진 아버지는 허우적거리지만, 곧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형제는 망연자실한 채 그 장면을 바라본다.
형제는 당황스럽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시신을 싣고 배를 젓는다.
그러나 호수를 건너던 중, 배는 갑작스러운 폭풍우를 만나 뒤집힌다.
형제는 간신히 육지로 헤엄쳐 나오지만, 아버지의 시신은 다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 순간, 공백의 세월보다 더 큰 충격과 공허가 두 아이의 마음을 휩쓸고 지나간다.
두 형제는 집으로 돌아온다.
집 안에는 여전히 낡은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고, 그 사진은 영화 초반과 다름없이 흐릿하다.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흔적, 이해되지 않은 행동들,
그리고 채워지지 않은 대화들은 끝내 풀리지 않은 채 남는다.
짧고 강렬했던 아버지와의 시간이 ..
3. 특징
◐ 미장센과 풍경의 힘
대사를 최소화하고, 러시아의 황량한 호수, 숲, 비 내리는 들판 같은 자연 풍광을 거의 하나의 인물처럼 사용했다.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와 운명을 비추는 거울처럼 작동한다.
차갑고 광대한 자연은 소년들의 두려움과 미지의 세계, 그리고 아버지의 신비로운 존재감을 강화한다.
◐ 부재와 귀환의 주제
12년간 부재했던 아버지의 귀환은 단순히 가족의 재회가 아니라, 부재했던 권위와 기억의 회복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귀환이 곧 다시 ‘부재’로 끝난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귀환은 곧 상실로 이어지고, 남겨진 아이들은 성숙과 공허 사이에서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된다.
◐ 상징성과 종교적 뉘앙스
영화는 기독교적 모티프를 은밀히 품고 있다. 아버지를 처음 발견하는 장면은 피에타(성모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를 연상시킨다.
아버지는 인류의 원형적 아버지, 혹은 신의 초상처럼 보이며, 동시에 인간적인 결핍을 드러내는 모순된 존재로 묘사된다.
◐ 아이의 시선으로 본 세계
아이들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특히 작은 아들 이반의 눈을 통해 아버지는 신비로우면서도 두려운 타인, 때로는 폭력적이면서도 보호자적인 양가적 인물로 비친다.
이 시선은 관객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며, 우리 자신의 성장기 기억과 권위적 인물에 대한 감정을 환기시킨다.
◐ 미스터리와 여백의 미학
아버지는 왜 돌아왔는지, 그가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 왜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는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 대신 여백을 남기고, 관객 스스로 질문하고 해석하게 한다.
이 미완의 질문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 여운을 남기는 힘이 된다.
4. 감상문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음속에 침묵의 잔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처음 보았을 때 단순히, 부재했던 아버지의 귀환에 관한 가족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안에는 우리가 어릴 적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과 성장의 고통,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이 겹겹이 스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속 아버지는 너무 늦게 돌아온다. 열두 해 동안 부재했던 그는 아이들에게 여전히 낯선 이방인일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피할 수 없는 권위, 이름조차 붙이기 어려운 ‘아버지’라는 존재 그 자체다.
아이들은 그와 함께 낚시를 하고,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지만, 그 시간은 설레는 추억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 모든 순간은 불안과 두려움, 의문으로 얼룩진다.
왜 지금 돌아왔는지, 왜 그토록 엄격하고 거칠게 굴어야 하는지, 그가 품고 있는 목적은 무엇인지..
영화를 보며,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이 결국 질문의 연속이었다는 것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부모를 신처럼 바라보지만, 동시에 그 신성은 너무 쉽게 무너진다.
아버지는 완전하지 않다. 그는 지혜와 힘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핍과 폭력을 품은 나약한 인간이기도 하다.
'리턴' 속 아버지는 바로 그런 존재로, 신비롭고 위압적이면서도 결국 너무나 인간적인 파국으로 사라진다.
아버지가 남긴 빈자리와 아이들의 표정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차갑게 스쳐 지나가는 러시아의 풍경만이 아이들의 허망한 표정을 감싼다.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아버지가 왜 돌아왔는지, 그는 무엇을 숨겼는지, 관객은 끝내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짧은 여정이 두 형제의 내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아버지를 다시 떠나보내며 비로소 어른이 되는 길에 한 발 내딛는다.
그 길은 결코 따뜻하거나 위로로 채워진 길이 아니다. 오히려 황량하고 차갑다.
그 공허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얻는다.
'리턴'은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황량한 호수의 풍경, 먹구름이 몰려오는 하늘, 흔들리는 배 위의 고요한 긴장. 그 모든 장면은 말보다 깊이 관객의 심장을 파고든다. 그래서 이 영화는 기억 속에서 장면들이 조각처럼 흩어져 남고, 그 조각들이 이어질 때마다 또 다른 감정과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부재와 존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인간 내면의 공허를 묵직하게 체험하게 만든다.
차갑고 절제된 화면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의 진폭은 러시아의 황량한 풍경처럼 광대하고 깊다.
결국 삶이란 이해할 수 없는 부재와 귀환,
그리고 반복되는 상실의 연속이라는 사실.
우리는 답을 얻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그 공백이 우리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비극이지만 동시에 성장의 기록이며,
무언가를 잃어야만 얻게 되는 세계의 진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 ◐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 우리도 사랑일까 》 줄거리, 특징, 감상문 (1) | 2025.09.03 |
---|---|
영화 《 카지노 》 줄거리, 특징, 감상문 (7) | 2025.09.02 |
영화 《인히어런트 바이스 》 줄거리, 특징, 총평 (13) | 2025.08.31 |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줄거리,특징, 총평 (17) | 2025.08.30 |
영화 《비포 선셋》 줄거리, 특징, 감상문 (9) | 2025.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