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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삶을 역순으로 따라가며, 한 인간의 붕괴와 상처를 시간의 궤적 속에 풀어낸 이야기.
1. 영화 개요
제목 : 박하사탕
장르 : 드라마
감독 : 이창동
주연 : 설경구, 문소리, 김여진
개봉 : 2000년, 대한민국
2. 줄거리
-- 초록빛 자연 속, 기차가 달린다. 한적한 기찻길 근처, 1999년 봄. 동호회의 회원들이 야유회를 즐기는 모습이 펼쳐진다.
웃음꽃이 피고 노래가 흐르는 그 평화로운 순간, 갑작스럽게 한 남자가 선로 위로 걸어 들어온다. 깔끔한 셔츠 차림에 초췌한 표정. 남자는 소리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기차의 굉음과 함께 장면이 바뀌고, 시간은 거슬러 올라간다.--
영호는 술에 취해 다리 위에 앉아 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분노와 후회를 동시에 터뜨린다.
그의 표정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고, 눈동자는 두려움으로 떨린다. 한때 형사였던 그는 이제 공사장 인부로, 삶의 방향을 잃은 채 방황한다. 다리 아래로 떨어질 듯, 위험천만한 모습을 보이며 그는 속으로 되뇐다.
“내가 잘못한 걸까... 그때,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가슴 속에 깊이 묻는다.
도심의 어두운 골목. 김영호는 이제 형사가 되어 있다. 하지만 정의와는 거리가 먼 경찰이다.
고문과 폭력을 일삼으며 범죄자에게서 ‘진실’을 짜내는 방식에 익숙하다.
동료 형사들과 웃으며 고문실을 오가던 그는, 죄 없는 사람조차 범인으로 몰아넣는 현실에 둔감해져 간다.
그날도 한 청년이 끌려왔다.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 있던 그는 죄가 없었다. 하지만 영호는 상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 청년을 모진 고문 끝에 자백하게 만든다. 고문실을 나선 영호는, 복도에서 마주친 여성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녀는 피해자의 여동생이었다. 절망 속에서 그를 노려보던 눈동자.
“왜 이러세요… 우리 오빠 죄 없어요... 제발요...”
그 순간, 영호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세상이 조금은 맑았던 시절. 김영호는 신입 경찰로 들어가기 직전이다. 대학생이던 그는 성실하고 조용한 청년이었다. 그에겐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순임*. 그녀와 함께한 따뜻한 봄날은 아직도 그의 기억 깊숙이 남아 있다.
공원 벤치에서 둘이 나눈 박하사탕. 순임은 웃으며 건넨다.
“이거 먹으면 마음이 시원해진대요.”
그 한 조각의 단순한 사탕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던 순간을 상징한다. 순임은 그의 첫사랑이었고,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군 입대를 앞두고 두 사람의 미래는 서서히 멀어진다. 영호는 경찰로서의 꿈을 좇으며 현실에 굴복하고, 순임은 점점 그에게서 멀어진다.
김영호의 인생에서 가장 잔인했던 시기. 20대 초반의 그는 징집되어 군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배속된 곳은 다름 아닌 *광주*였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시위가 진압되는 그 참혹한 현장 속에서, 그는 명령에 따라 무기를 들고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눠야 했다.
폭우처럼 내리던 총성, 화염에 휩싸인 시청 건물, 쓰러진 시민들. 그 날, 그는 한 소녀를 향해 총을 쐈다. 소녀의 얼굴은 놀랍게도, 순임을 닮아 있었다. 트라우마는 그를 영원히 놓아주지 않는다. 살의가 아닌 공포 속에서 우발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순간,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인간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쏜 거 맞아? 내가... 사람을?”
그날 이후, 영호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학생이던 김영호는 기타를 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순수한 꿈을 꾸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순임과의 첫 만남도 이 시기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그녀에게 말을 걸기 위해 몇 번을 망설였다. 결국 같이 걷게 된 봄길, 꽃잎이 흩날리는 벚꽃길 위에서 두 사람은 처음 손을 잡는다.
그는 그녀의 웃음을 사랑했고, 그녀는 그의 조심스러운 다정함을 좋아했다. 그들의 미래엔 아픔도 고통도 없을 것이라 믿었다.
“우리 나중에 바닷가 근처에서 책방 하나 차릴까?”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모든 것이 가능할 것만 같았던 그 시절. 그러나 그 희망은 역사라는 큰 파도 앞에 서서히 사라진다.
다시 처음 장면. 1999년, 그 기찻길. 삶의 파편을 모두 떠올린 김영호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선로에 선다. 손에는 박하사탕 하나가 쥐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입에 넣으며 그 맛을 음미한다. 눈을 감는다. 20년 전 순임이 건네주던 사탕의 감촉이 혀끝에 맴돈다.
“나... 다시 돌아갈래...”
기차가 달려온다. 시간은 앞으로 가지만, 그의 삶은 과거에 갇혀 있다.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철컥, 굉음, 그리고 침묵.00
3. 특징
◐ 역순 서사 구조
뚜렷한 특징은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만드는 서사 구조입니다.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방식이 아닌, 현재에서 과거로 되돌아가며 사건의 원인을 해부합니다.
첫 장면에서 주인공 김영호가 죽음을 선택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하고, 이후 영화는 시간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가며 그의 과거를 탐험합니다.
이는 관객에게 끊임없는 의문을 던지고, 회상될수록 ‘왜 그가 그렇게 무너졌는가’라는 핵심 질문에 가까워지도록 이끕니다.
이 역순 구성은 시간이 인간을 파괴하는가, 아니면 과거의 상처가 현재를 지배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 개인사와 한국 현대사의 교차점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개인의 삶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광주민주화운동(1980), 군사정권 하의 경찰 고문(1980~~90년대), 외환위기 이후의 삶(1997~~1999) 등, 역사적 사건들이 김영호의 인생을 조각처럼 무너뜨립니다.
주인공은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되지만, 그 뿌리를 추적해보면 그 역시 제도와 구조 속에서 희생당한 피해자였다는 복합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기억과 망각, 개인의 책임과 사회적 구조사이에서 끝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 상징의 영화 – 박하사탕, 기차, 선로
영화는 시종일관 강력한 상징들을 활용하여 감정을 전달합니다.
박하사탕은 순수, 첫사랑, 희망, 혹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상징입니다. 영화 내내 박하사탕은 삶의 절정과 나락을 동시에 상기시키는 물건으로 기능합니다.
기차와 철길은 시간, 되돌아갈 수 없는 길, 혹은 되돌리고 싶은 인생을 상징합니다. 처음과 끝의 기찻길은 결국 그의 마지막 선택을 압도적인 감정으로 마감합니다.
이러한 상징들은 말보다 더 깊은 감정의 무게를 전달합니다.
◐ 이창동 감독 특유의 리얼리즘
이창동 감독은 문학적 서사와 사회적 메시지를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풀어내는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인물의 표정, 침묵, 시선, 배경음 없이 흐르는 순간들을 통해 복잡한 내면을 직조합니다.
“설명하지 않되 느끼게 만드는” 연출 방식은 존재론적 울림을 제공합니다.
4. 총평
『박하사탕』은 마치 한 사람의 기억과 죄책감을 해체해 나가는 심리 실험이자 역사적 복기입니다.
한 남자의 인생을 거꾸로 펼쳐 보이며, 역사와 개인의 불행이 어떻게 얽히고, 어떻게 인간을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줍니다.
단순한 삶의 실패가 아닌, 국가폭력, 트라우마, 후회, 잃어버린 사랑이 어떻게 한 인간을 변형시키는지 조용하고 절절하게 말합니다.
김영호의 마지막 비명 “나 다시 돌아갈래!”를 듣고 그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한 인간의 몰락에 담긴 사회의 책임과 개인의 고뇌를 함께 마주하게 됩니다.
주인공이 잘못된 선택을 한 순간마다, 그것이 단지 개인의 결함이 아닌, 사회적 맥락 속에서 결정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피해자입니다. 그가 고문을 했고, 총을 쐈지만, 그 또한 그 시대의 기계처럼 조정당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지만, 상처는 머문다
“당신은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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