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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기 때문에 죄가 되었고, 죄였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었던 이야기
1. 영화 개요
제목 : 헤어질 결심
장르 : 드라마, 멜로
감독 : 박찬욱
주연 :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개봉 : 2022년, 대한민국
2. 줄거리
짙은 안개가 깔린 이른 아침, 한 남자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 그곳은 외진 산 정상, 등산 도중의 추락사처럼 보인다.
사건을 맡은 형사 해준(박해일)은 노련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범죄를 단순한 사건으로 보지 않는 섬세한 수사관이다. 그는 낮에는 냉철한 형사지만, 밤에는 불면증과 우울함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사망자의 부인은 서래(탕웨이). 중국계 이민자로, 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해준은 그녀를 처음 대면하자마자 묘한 인상을 받는다. 차분하지만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눈빛, 문장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지만 강한 의사를 전달하는 그녀의 말투. 해준은 처음부터 그녀를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매혹’당한다.
“남편이 죽었는데, 당신은 슬퍼 보이지 않네요.”
“사랑하지 않았으니까요.”
차분하게 던지는 서래의 말은, 수사와 감정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작이었다.
해준은 서래를 의심한다. 그녀가 남편을 밀었을 가능성, 혹은 죽음을 방조했을 가능성을 분석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구속하지 않는다. 대신 밤마다 그녀를 몰래 관찰한다.
그녀의 집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며, 그녀의 식사, 잠, 일상, 고독을 바라본다. 처음엔 증거를 찾기 위한 감시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관심, 호기심, 그리고 감정으로 바뀌어 간다.
한밤중 그녀가 밥을 먹고 있는 모습, 혼잣말을 하는 모습, 울음을 참는 모습.
그는 그녀의 외로움과 슬픔을 감지하고, 조금씩 빠져든다.
이 사랑은 마음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범죄의 흔적을 좇다 걸려든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남편이 죽기 전 GPS 기록, 핸드폰 위치 등 정황 증거들이 서서히 그녀를 가리킨다. 그러나 해준은 이를 덮는다.
그는 증거보다 그녀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감정에 더 충실해진다.
해준은 서래에게 묻는다.
“당신이 남편을 죽였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그랬나요?”
서래는 대답 대신, 조용히 그의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범죄의 경계를 넘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감싸며 무너진다.
서래는 해준의 집에 음식을 해주고, 그의 불면을 걱정한다. 해준은 그녀의 집에 와 스스로를 경찰이 아니라 연인처럼 느낀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을 허락하지 않는다.
해준의 아내는 그와의 거리감을 느끼고 지방으로 떠나자고 한다. 그는 서래를 두고 떠난다.
시간이 흐르고, 해준은 부산으로 전근 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에서 서래를 다시 만난다.
이제 그녀는 새로운 남편과 결혼해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남편도 곧 살해당한다.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바다에서 익사한 사건. 또다시 서래가 유력 용의자가 된다.
해준은 혼란에 빠진다. 정말 이 여자는 위험한 사람일까?, ‘나는 그녀를 구해야 하나, 잡아야 하나?’
그는 알게 된다. 그녀가 남편을 죽인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유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그를 향한 사랑의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녀는 말했다.
“내가 당신의 수사를 방해하지 않으려면, 사랑하지 않아야 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그녀에게 사랑은 죄와 같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죄를 선택하고, 또 죄에서 멀어지기 위해 그를 떠나려 한다.
어느 날, 서래는 해준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당신을 잊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더는 당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그날 이후, 그녀는 사라진다. 해준은 그녀를 찾는다. 필사적으로 바닷가를 뒤진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장소, 파도에 잠긴 방파제, 그리고 그 아래 깊은 모래사장.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그녀는 그곳에 스스로 묻혔다는 것을.
해준은 절규한다.
“당신을... 어떻게 찾지? 당신이 만든 그 무덤을 내가...”
마지막 장면, 카메라는 잔잔한 바다를 비춘다. 그녀는 그 안에 있다. 말없이, 조용히,
*사랑한 사람의 기억 속에만 남은 채.*
3. 특징
◐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박찬욱표 ‘멜로 누아르(어둡고 비관적인 분위기의 영화)'
멜로와 스릴러, 누아르와 심리극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입니다.
살인사건과 형사, 용의자라는 틀은 전형적인 수사물의 구조를 따릅니다.
하지만 중심에 있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 두 인물 사이의 애매하고 위태로운 감정선입니다.
이 감정선은 명확히 고백되거나 합의되지 않으며, 침묵과 시선, 수사라는 ‘관찰의 프레임’을 통해 형성됩니다.
이 영화는 형식은 범죄물이지만, 본질은 멜로이고, 결말은 비극인 복합 장르 입니다.
◐ 관찰’과 기억을 연출의 중심으로 삼은 미장센
관찰하는 카메라와 기억하는 이미지라는 두 축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형상화합니다.
주인공 해준은 서래를 망원렌즈로 관찰합니다. 그러나 그 감시는 어느 순간 연애의 시선으로 전환됩니다.
카메라는 인물의 주관을 따라가며, 실제 장소와 감정이 뒤섞인 심리적 몽타주를 자주 사용합니다.
예) 해준이 그녀를 생각할 때, 마치 그녀가 그의 옆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시퀀스.
이는 현실과 감정, 관찰과 욕망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관객 역시 해준처럼 그녀에게 이입하게 됩니다.
◐ 절제된 색감과 공간 – 감정을 숨기는 미술적 장치
푸른 계열의 톤을 주로 사용하며 감정의 차가움과 불안함을 시각화합니다.
(예: 해준의 형사 사무실, 새벽 바다, 안개 낀 절벽 등)
공간의 배치 또한 인물 간 거리감을 상징합니다.
예) 해준의 집 – 깔끔하고 무미건조한 일상
서래의 집 – 언덕 위, 불안정한 위치
바닷가 – 기억이 묻히는 곳
감독은 이러한 시각적 요소를 통해 말보다 더 많은 감정을 이미지로 전달합니다.
◐ 양면성과 다층성의 캐릭터 설계
해준은 도덕적이고 정직한 형사지만, 서래에게는 끝없이 흔들립니다.
그는 법을 지키는 자에서 사랑에 굴복하는 자로 이행합니다.
서래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혹은 순수한 사랑의 주체인가?
그녀는 스스로 한국말이 서툴다며 한발 물러서 있지만, 동시에 해준의 감정을 정교하게 유도합니다.
이 캐릭터들은 선악이나 감정의 이분법으로 해석되지 않고, 모순과 애매함 속에서 입체화됩니다.
이러한 설계는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를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게 만들며,
결국 영화 전체가 하나의 ‘심리적 증거 수집’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4. 총평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모호하고, 동시에 치명적인지를 치밀한 영화 문법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사랑과 죄, 감정과 윤리, 기억과 망각의 교차점에 선 두 사람의 이야기.
해준은 평생 원칙대로 살아온 형사다. 그런 그가 마음속으로 죄를 품고 있는 서래를 만나며 혼란에 빠진다.
그는 그녀를 의심하면서도 사랑하고, 그녀를 지켜보면서도 놓아준다.
반면, 서래는 사랑을 위해 죄를 선택하고, 그 죄를 덮기 위해 스스로 사라지는 여인이다.
사랑은 설렘보다 관찰로 시작되고, 고백보다 죄책감으로 끝납니다.
해준은 서래를 구하려다 무너지고, 서래는 해준을 지키려다 사라집니다.
그들의 사랑은 어떤 공식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그것은 고백도, 연애도, 미래도 없는 순간적이고 비극적인 공명이다.
그들의 관계는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었고, '헤어질 결심’을 하는 순간 사랑은 완성됩니다.
느끼고, 고민하게 만들며, 감정의, 찌꺼기를 오랫동안 남기는 영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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