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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공허한 내면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의 본질을 시적으로 그려낸 영화.
1. 영화 개요
제목 : 그레이트 뷰티 (La grande bellezza)
장르 : 코미디
감독 : 파올로 소렌티노
주연 : 토니 세르빌로, 사브리나 페릴리, 게레나 그랜디
개봉 : 2013년, 이탈리아, 프랑스
2. 줄거리
로마의 한 여름, 태양은 마치 인간의 허영과 나태를 드러내듯 짙고도 잔인하게 내리쬔다.
카메라는 천천히, 그러나 의식의 흐름처럼 흔들리며 로마의 오래된 돌길을 스친다.
분수대 옆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바람은 교회의 돔을 넘어 천년의 먼지를 흔든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서 있다. *젭 감바르델라*,
일흔을 넘긴 사교계의 명사이자 한때는 뛰어난 소설가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 흰 리넨 정장과 붉은 스카프, 약간 비뚤어진 미소.
그의 시선은 화려한 로마의 밤 위를 부유하지만, 그 눈빛 안에는 오래된 공허가 서려 있다.
젭의 생일파티는 이 도시의 모든 허영을 한데 모은 듯하다.
옛 귀족, 예술가, 정치인, 모델, 텔레비전 인물들이 모여들어 음악과 술, 춤, 욕망의 향연을 펼친다.
네온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웃고 흔들리지만, 그 웃음에는 피로와 공허가 배어 있다. 젭은 그 한가운데서 미묘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파티의 주인이자, 동시에 관찰자다. 그는 웃지만, 마음속에선 묻는다.
“이것이 인생의 위대함인가?
이 화려한 껍데기 속에 진짜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가?”
파티가 끝나고, 젭은 로마의 새벽거리를 걷는다. 공기는 축축하고, 돌길엔 낡은 낙엽이 붙어 있다.
그는 도시의 숨소리를 듣는다. 먼 곳에서 교회 종소리가 울리고, 한 여인이 창문을 열어 커튼을 흔든다.
소렌티노의 카메라는 젭의 걸음을 따라 부유하며, 그가 마주치는 모든 풍경을 조용히 포착한다.
세월에 닳은 벽, 잠든 조각상, 그리고 로마의 하늘.
젭은 한때 “인생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써 내려갔던 작가였다. 하지만 그 후 그는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다.
그의 재능은 사교계의 화려함 속에 묻혔고, 그는 파티와 인터뷰, 그리고 속물적인 예술 담론 속에서 노년을 맞는다.
그는 명성을 가졌지만, 영혼은 비어 있다.
어느 날, 젭은 과거의 한 연인, 그의 첫사랑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문득 오래 전의 자신과 마주한다.
사랑했던 그 여인과 함께 걷던 청춘의 거리, 푸른 바다, 미소.
그녀의 남편은 젭에게 말한다. 그녀는 평생 동안 젭을 잊지 못했다고.
그 말은 젭의 내면 깊숙한 곳에 던져진 돌처럼 파문을 만든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후 젭은 로마의 숨겨진 얼굴들을 찾아 나선다.
오래된 수도원의 벽, 조용히 살아가는 수녀들, 쇠락한 귀족의 저택, 허세 가득한 예술가의 집.
그는 여전히 파티에 초대받지만, 그 속에서 점점 이질감을 느낀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자신을 예술가라 부르는 젊은 작가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지, 진짜 삶이란 무엇인지 되묻는다.
젭의 친구들은 하나둘씩 늙어간다. 로마의 밤은 여전히 화려하지만, 그 속의 인간들은 점점 피로해지고 무의미해진다.
그는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새벽의 공허한 거리를 걸으며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은 사람도, 성공도 아닌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는 것을.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더 이상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다.
젭은 로마 곳곳을 떠돈다. 붉은 석양이 스치는 테베레 강가, 유적의 그림자 아래, 수도사의 묵언 속에서 그는 무언가를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젭은 노년의 수녀, 모두가 “성녀”라 부르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젭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왜 단 한 권의 책만 썼나요?” 젭은 잠시 침묵하다가 답한다.
“나는 파티를 열 줄 알았지, 인생을 시작하는 법은 몰랐습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뿌리로 돌아가세요. 뿌리에는 진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젭의 심장을 천천히 파고든다. 그는 도시의 천년의 돌 아래, 다시 잊혀졌던 감각을 느낀다.
새벽빛이 로마의 옥상 위를 스치며 돌담을 부드럽게 비출 때, 그는 자신의 기억 속 첫사랑과 다시 마주한다.
그 바닷가에서, 두 사람은 젊고 맑은 시절의 웃음을 나누고 있었다.
그 장면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린다. 젭은 기억 속 그녀와 함께 걷고, 하얀 파도는 그의 발목을 감싼다.
그는 문득 깨닫는다.인생의 위대한 아름다움은 눈부신 성공이나 화려한 밤이 아니라,
순간의 감정, 사랑의 잔상, 살아 있음의 진실한 떨림 속에 있다는 것을.
젭은 다시 글을 쓴다. 그의 펜 끝은 오랜 침묵을 깨듯 느리게 움직인다.
그는 로마의 지붕 위로 떠오르는 햇살을 바라보며, 삶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너무 오래 눈을 감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음악이 흐르고, 카메라는 천천히 도시를 가로지른다.
교회의 첨탑, 조각상, 하얀 비둘기, 그리고 테베레 강의 잔잔한 물결. 로마는 여전히 찬란하고, 그 속의 젭은 이제 조금 다르게 숨 쉬고 있다.
그는 여전히 늙었고, 여전히 혼자지만,
이제 그는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 본다.
그것은 화려하지 않지만, 진실하다.
그것은 거대하지 않지만, 위대하다.
그레이트 뷰티.
젭이 평생 찾아 헤맨 그 아름다움은,
결국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조용히 있었다.


3. 특징
◐ 시각적 미학의 극치
소렌티노는 로마를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기억과 허무, 시간의 신전’으로 묘사한다.
건축, 조각, 파티, 하늘의 색감, 인물의 동선까지 모든 장면이 회화처럼 구성된다.
◐ 시간과 허무의 철학적 탐구
영화는 노년의 작가 젭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젊음의 광휘, 예술의 허영, 신앙의 침묵, 사랑의 기억이 서로 부딪히며 인간의 유한함과 영원의 갈망을 병치한다.
◐ 음악과 침묵의 대비
전자음악이 울려 퍼지는 파티 장면과, 수도원의 고요한 성가 장면은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소렌티노는 음악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영혼을 드러내는 리듬으로 사용한다.
◐ 인생의 아이러니를 품은 유머
젭의 냉소적 태도, 예술가들의 허세, 정치적 빈말 속에서도, 영화는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그것은 인생의 슬픔을 웃음으로 덮는 이탈리아적 낭만의 정수다.
현실과 환상이 섞이고, 회상과 현재가 뒤섞이며,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원처럼 순환한다.


4. 감상문
로마의 하늘은 그렇게도 아름다운데, 그 아래의 인간들은 왜 이토록 공허한가.
이 영화는 정오의 햇빛 아래서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눈부신 빛 속에 자신이 점점 사라져 버리는 감각.
젭 감바르델라는 그 빛 속에서 늙어버린 예술가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그는 젊은 시절, 한 권의 소설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인생은 파티와 허세, 사교와 냉소로 가득 찼다.
영화는 그를 비난하지 않고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묻는다.
“젭, 너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보고 있니?”
로마의 거리는 마치 살아 있는 시체 같다. 화려하지만, 숨이 막힌다.
천년의 조각상과 현대의 네온사인이 한 화면에 공존할 때, 시간의 무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흩날린다.
젭이 걸어가는 길 위에는 그의 청춘, 사랑, 후회, 그리고 쓰지 못한 문장들이 뒤섞여 있다.
그가 바라보는 조각의 눈빛은 그를 바라보는 인간의 눈빛과 닮아 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
소렌티노는 이 영화를 통해 삶의 소리 없는 진실을 들려준다.
화려한 파티의 음악이 끝나고 난 뒤의 침묵, 그곳에서 들리는 것은 우리의 숨소리, 늙어가는 시간의 박동,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의 잔향이다.
젭이 성녀를 만나 “나는 인생을 시작하는 법을 몰랐다”고 말할 때, 그것은 한 개인의 후회이자, 인간 전체의 고백처럼 들린다.
젭이 마주하는 조용한 새벽.
그는 더 이상 젊지 않지만, 오히려 이제야 세상을 보는 눈을 얻는다.
그 눈에는 욕망 대신 관조가,
허영 대신 슬픔이, 그리고
슬픔 너머에 고요한 평화가 깃든다.
'그레이트 뷰티'는 인생의 정점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어떤 '빛'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서늘하고 순한 깨달음이다.
“위대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오래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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