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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과 믿음을 그리워하며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한 남자의 내면적 방황과 영적 갈망을 시적으로 담아낸 영화
1. 영화 개요
제목 : 노스탤지아 (Nostalghia)
장르 : 드라마
감독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주연 : 올레드 얀코브스키, 얼랜드 조셉슨, 도미지아나 지오
개봉 : 1983년, 이탈리아
2. 줄거리
짙은 회색 구름이 드리운 하늘 아래, 안개 낀 언덕길. 바람도 없는 고요 속에서 오래된 돌길을 따라 두 사람의 실루엣이 천천히 걷고 있다. 러시아 출신 시인 안드레이 고르차코프와 통역사 유리야.
그들의 발밑에서 젖은 낙엽과 진흙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조용히 울린다.
화면은 광각으로 펼쳐진 언덕과 구부러진 나무들을 보여주고, 두 사람의 움직임은 마치 시간마저 잊은 듯 느릿하다.
안드레이는 말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그의 눈길은 담담하지만, 어딘가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운 듯하다. 옆에서 유리야가 이탈리아어로 설명을 붙이지만, 그의 귀에는 닿지 않는 듯하다. 화면은 느릿하게 돌담 위에 핀 이끼,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젖은 풀잎을 잡으며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들은 오래된 교회 앞에 멈춰 선다.. 검게 변색된 목재 문과 낡은 종탑, 벽 틈새로 자라는 풀. 유리야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안드레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른다. 교회 내부는 텅 비어 있다.
축축한 냄새와 함께,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똑, 똑, 끊임없이 떨어진다. 바닥엔 작은 웅덩이가 생겼다.
그 웅덩이에 비친 희미한 빛 속에서, 안드레이는 가만히 무릎을 꿇는다. 손가락으로 물을 건드리고, 그 물결이 잔잔하게 퍼진다.
아무 말도 없다.
오직 물방울 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숨소리뿐.
화면은 전환되고, 안드레이는 호텔 방 창가에 앉아있다. 창문 밖으로는 회색빛 하늘과 오래된 마을 지붕들이 보인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그는 흰 종이에 몇 줄을 적다 멈춘다. 연필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어젖힌다.
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방 안으로 흩뿌려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탁자 위, 러시아에서 가져온 가족사진을 손끝으로 쓰다듬는다. 아내와 아이, 그리고 자신이 함께 찍은 오래된 흑백 사진. 그의 눈빛에 미세한 떨림이 생긴다.
다음 날, 다시 마을을 걷는 두 사람. 마을 광장에는 아무도 없다. 유리야는 장갑을 낀 손으로 담배를 피운다.
안드레이는 멀찍이 떨어져 혼자 걷는다.
그리고 우연히, 폐허가 된 수영장 근처에서 한 남자와 마주친다. 도메니코.
검은 코트를 입고, 덥수룩한 수염과 깊은 주름을 지닌 남자. 그는 안드레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연다.
"당신은 왜 여기에 있소?"
안드레이는 답하지 않는다. 그저 눈길을 내리고, 물 위에 비친 하늘을 본다. 수영장 바닥은 깨지고, 물은 검푸르게 고여 있다.
도메니코는 그 물가에 앉아 촛불을 하나 켠다. 작은 불꽃이 흔들리며, 그의 얼굴을 어둡게 비춘다. 그리고 도메니코는 말한다.
"이 물을 건너,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끝까지 가야 해요. 그래야 세상이 구원받을 거요."
그 말은 돌처럼 무겁게 울린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아무 대답 없이 물가를 떠난다.
저녁, 호텔 식당. 유리야는 안드레이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와인잔을 들었다가, 그대로 내려놓는다. 유리야는 답답한 듯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긴다.
하지만 안드레이의 시선은 이미 그녀를 벗어나 있다. 그는 식당 창밖을 바라본다.
화면은 창밖으로 서서히 이동하며, 어둠이 내린 마을 풍경을 보여준다.
그날 밤, 안드레이는 꿈을 꾼다. 흑백 화면으로 전환되고, 러시아의 설원. 그의 아내와 아이가 무너진 교회 옆에 서 있다.
흰 눈이 천천히 내리고,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만 들린다. 안드레이는 그들을 향해 걸어가지만, 아무리 걸어도 닿지 않는다.
갑자기 눈발 속에서 도메니코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야 해요. 끝까지."
다음 날, 도메니코는 로마로 향한다. 영화는 갑자기 넓은 광장으로 전환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로마의 중심. 카메라는 멀찍이서 도메니코를 따라간다.
그는 광장 중앙에 서서 외친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지만, 그는 쉼 없이 말한다.
"서로 사랑하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그의 절규가 메아리친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다. 불길이 그의 몸을 감싸며 타오른다.
사람들은 달려가지만, 카메라는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본다.
음악은 없고, 오직 불꽃 타는 소리와 군중의 숨죽인 목소리.
다시 마을. 안드레이는 깊은 침묵 속에서 도메니코의 죽음을 전해 듣고, 마침내 결심한다.
호텔 방에서 촛불 하나를 집어 들고, 폐허가 된 수영장으로 향한다. 화면은 그를 따라가며 천천히 이동한다.
물가에 선 안드레이는 숨을 고르고, 촛불을 켠다.
그리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물 위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촛불은 바람에 꺼질 듯 흔들린다. 첫 번째 시도에서 촛불이 꺼진다. 그는 돌아가 다시 켜고, 다시 걷는다.
그 장면은 숨막히도록 길게 이어진다.
관객의 시간 감각이 사라질 정도로 천천히, 조용히. 두 번째 시도에서도 실패.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세 번째, 안드레이는 마침내 끝까지 간다. 수영장의 마지막 끝에서, 그는 촛불을 조용히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그 순간, 화면은 서서히 흑백으로 전환된다.
안드레이는 러시아의 폐허가 된 교회 앞에 서 있다. 눈이 내리고, 그의 곁에는 가족이 함께 있다.
구부러진 나무와 무너진 벽돌, 그리고 그 위로 내리는 끝없는 눈.
화면은 서서히 멀어지며, 오직 바람 소리만이 잔잔하게 들린다.
화면이 암전되고, 긴 침묵 속에서 영화는 끝난다.
3. 특징
◐ 느리게 흐르는 시간의 미학
타르코프스키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와 미니멀한 편집. 한 장면, 한 동작이 길게 이어지며, 마치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체험을 제공한다. 시간 자체가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감각이 이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 회색빛과 물, 불, 안개
색감은 의도적으로 탁하고 회색조를 띠며,, 물, 불, 안개 같은 자연적 요소가 반복 등장한다. 폐허가 된 수영장, 비에 젖은 교회, 물 위를 걷는 촛불 등, 물과 불의 상징성은 인간의 내면과 신앙, 희생을 표현한다.
◐ 내면과 외부 세계의 모호한 경계
안드레이의 러시아에 대한 향수와 현실에서의 방황이 교차되며, 꿈과 현실의 구분이 점차 흐릿해진다. 마지막 흑백 장면에서 러시아의 폐허와 가족이 등장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 종교적, 철학적 메시지
단순한 시인의 여행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신앙, 희생, 노스텔지어(향수병) 자체가 영화의 중요한 주제다.
도메니코의 촛불 의식과 자살 장면은, 개인이 인류를 위해 감내하는 고통과 신념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 극도로 절제된 감정 표현
등장인물들은 과장된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차갑고 무표정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깊은 감정들이 관객의 해석을 기다린다. 보는 사람이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투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4. 총평
《노스텔지아》는 한 편의 시이자 기도이며, 혹은 오래된 기억의 조각처럼 느껴진다.
느리고 묵직한 장면 하나하나가, 보는 이의 마음 깊숙한 곳을 두드리는 힘이 있다.
촛불을 들고 물 위를 걷는 안드레이의 모습은 마치 인간 존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듯하다.
작고 흔들리는 불빛 하나를 붙잡고, 끝없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인간.
쉽지 않은 길이지만, 결국 끝까지 가야 하는 길.
또한 도메니코의 광장 연설과 불타는 장면에서는,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신념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모두가 각자의 욕망에만 매달리고 있는가?
러시아의 눈 내리는 폐허, 이탈리아의 안개 낀 언덕, 그 두 세계 사이에서 안드레이가 방황하는 모습은 곧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외로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결국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작은 희망.
《노스텔지아》는 인내를 요구하는 영화입니다.
오랫동안 가슴속에 머무는 잔향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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