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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다이아몬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혼란 속에서, 이념과 인간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년의 허무와 선택을 그린 폴란드  영화.

 
 

1. 영화 개요

제목 : 재와 다이아몬드 (Popiół i diament)

장르 : 드라마

감독 : 안제이 바이다

주연 : 지그유 시불스키

개봉 1958년, 폴란드

2. 줄거리

검은 하늘 아래, 새벽도 아닌, 밤도 아닌 애매한 시간. 화면에는 폐허가 된 폴란드 시골 마을이 보인다. 

거대한 교회 첨탑이 멀리 어둡게 솟아있고, 거리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마을 전체가 숨죽인 듯 고요하다. 

화면은 천천히 내려가, 낡은 벽과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 앞에 멈춘다.

 

길모퉁이, 두 남자. 마첵과 안제이. 둘은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다. 담배를 한 모금 빨고, 손가락 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마첵, 손에 권총을 쥐고 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앞쪽 도로를 바라본다.

멀리서 자동차 엔진 소리. 헤드라이트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들은 폴란드 지하조직의 일원으로, 이제 막 끝난 전쟁 뒤 새로운 공산 정부를 위해 일하는 당 간부 슈체카를 암살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

 

자동차, 느리게 다가온다. 마첵, 숨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긴다. 섬광과 함께 총성이 골목을 가른다.

차가 멈춘다. 남자들이 쓰러진다. 달려가 확인한다

 목표물이 아니다. 민간인이다.

마첵, 입술을 깨문다. 피가 바닥에 퍼진다. 주변은 다시 고요.

 

다음날 광장 중앙에  빨간 깃발이 걸린다. 군악대, 드럼과 트럼펫 소리. 사람들, 피로한 얼굴로 깃발을 흔든다.

나치 독일 점령이 끝났음을 기념하는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전쟁이 끝났다고 말하지만, 모두의 눈은 공허하다.

마첵, 코트 깃을 세우고 광장을 걷는다. 눈길은 바닥만 보고, 사람들과 부딪쳐도 그냥 지나친다.

 

그는 오래된 호텔로 들어간다. 문을 밀고, 오래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로비를 지난다. 바 안은 담배 연기로 가득하다.

빛은 노랗고 희미하다. 마첵, 바에 앉는다. 보드카 한 잔을 시킨다. 술잔을 기울이며, 거울 너머 자신의 얼굴을 본다.

눈 밑이 붓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곳, 테이블 한쪽 구석. 한 여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크리스트나. 호텔 종업원이자 바텐더. 

얇은 금발 머리카락, 희미한 미소. 마첵, 조용히 다가가 담배를 빌린다.

둘 사이, 말 한마디 없다가, 크리스트나 눈길을 돌린다.

"전쟁 끝났는데, 또 뭐 하러 이런 얼굴 하고 다녀요?" 

마첵, 웃지 않는다. 대신 담배를 빼물고 고개를 돌린다.

 

작은 침대. 마첵과 크리스트나, 어깨를 맞대고 앉아있다. 창밖, 불꽃놀이. 빨간 불빛이 벽을 물들인다.

하지만 둘은 불빛을 보지 않는다. 마첵, 라디오를 켜고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 위로 두 사람 숨소리만 섞인다.


"
당신은 왜 그렇게 슬퍼 보여요?" 

"우린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마첵, 담배 끝을 탁 치고, 머리맡에 총을 내려놓는다. 방 안 공기 무겁다.

 

새벽, 지하 창고. 캄캄한 조명 아래, 마첵과 상관이 다시 만난다. 슈체카, 아직 살아있다.

오늘 밤 다시 처리하라고 명령이 내려진다.

마첵, 아무 말 없다. 하지만 손이 떨린다. 권총을 가슴 안쪽 주머니에 숨긴다.

 

해 뜨기 직전, 광장. 군악대 다시 시작. 사람들은 구호를 외친다. "새로운 폴란드!"

마첵, 군중 사이를 걷는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슈체카를 찾는다.

그때, 크리스트나. 군중 속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잠시 멈춘다. 그녀도 그를 본다.

마첵, 주머니 안 총을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꺼내지 않는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

 

행사가 끝나고, 어둠. 슈체카는 호텔 근처 골목으로 사라진다. 마첵, 뒤를 밟는다.

골목. 슈체카가 담배를 피우려는 순간, 총성이 울린다. 슈체카, 그대로 주저앉는다.

마첵, 총을 떨어뜨리고 도망친다.

 

발소리,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 마첵, 골목과 광장을 가로질러 달린다. 뛰고 또 뛰지만, 발이 점점 느려진다.

어둡고 넓은 공사장. 철근과 돌무더기 사이를 가로질러 간다.

 

두 발의 총성. 마첵, 가슴을 부여잡고 무너지듯 쓰러진다.

흰 셔츠 위로 붉은 피가 번진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얼굴을 돌린다.

 

먼 곳에서는 여전히 군악대 음악이 들리고, 사람들은 행진하고, 축제는 계속되고 있다.

마첵의 몸은 작아지고, 넓은 회색 들판과 교회 첨탑이 다시 화면에 들어온다.

 

카메라는 위로 서서히 올라가, 죽어가는 마첵의 모습을 멀리서 비추고..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3. 특징

◐ 전쟁 직후 폴란드의 모순적 풍경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그날, 단 하루 동안을 배경으로 한다. 폴란드는 해방을 맞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오지 않았다.

광장에서 펼쳐지는 축제와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암살과 정치적 암투가 동시에 그려진다.

한쪽은 승리의 불꽃놀이, 다른 쪽은 피 묻은 총. 그 상반된 분위기가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 마첵이라는 인물의 상징성

마첵은 전쟁 영웅이지만, 더 이상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모르는 청년이다. 젊음, 방황, 시대에 휩쓸린 운명. 그가 손에 쥔 권총과 담배, 술잔은 모두 그런 공허함과 갈등을 상징한다. 특히 마지막 죽음 장면에서 그는 역사 속 이름 없는 개인으로 사라진다.

 

◐ 세련된 흑백 미장센

안제이 바이다는 극도로 세련된 흑백 화면을 통해,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극대화한다. 어두운 골목, 빛나는 광장, 불꽃놀이와 죽음의 순간까지. 마치 전쟁의 끝과 새로운 시작 사이에 끼어 있는 시대 자체를 표현한 듯하다.

 

◐ 시간적 밀도와 공간감

영화는 단 하루, 한 도시, 한 광장과 호텔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모든 사건을 풀어낸다. 하지만 그 좁은 공간 안에 전쟁의 끝, 새로운 체제, 인간 관계, 사랑과 죽음, 역사와 개인이 모두 담겨 있다. 절제된 연출 덕분에, 단순한 공간이지만 무게감은  무겁다.

 

◐ 상징과 암시

영화 속에서 술, 담배, 피아노, 불꽃놀이, 총성 같은 요소들은 하나하나 상징으로 작용한다. 특히 마지막 공사장과 마첵의 피 흘리는 흰 셔츠는, '''다이아몬드'라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평범한 인간의 죽음과 그 안에 깃든 빛을 동시에 보여준다.

 

 

4. 감상문

《재와 다이아몬드》는 폴란드 역사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정치적 혼란과 개인적 갈등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그 어떤 대사보다도 강렬한 이미지가 남는다.

불꽃놀이가 터지는 밤하늘 아래, 마첵이 호텔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모습. 어두운 골목, 권총을 쥔 채 머뭇거리던 손.

그리고 공사장 흙바닥 위, 흰 셔츠 위로 피가 번져가던 그 마지막 순간.

 

마첵은 영웅도, 악당도 아니다. 그저 시대에 끌려다니는 청년이다.

사랑도 하고 싶고, 자유도 원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총을 쥐게 만든다.

그가 크리스트나와 나눴던 짧은 순간의 평화조차, 결국 무너지고 만다.

 

전쟁은 끝났지만, 총은 여전히 사람을 죽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의심한다.

마을 광장에서 흘러나오던 군악대 음악은 어쩐지 너무 씁쓸하게 들린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58년 폴란드라는 현실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마첵이 죽고, 화면이 멀어질 때 느껴지는 공허함은 단순한 슬픔과는 다르다. 그 시대, 그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감정이다.

한 개인의 죽음이 아무 의미도 없는 듯 흘러가 버리는 시대.

하지만, 바로 그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이야말로, 진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재와 다이아몬드는 전쟁영화이지만 , 인간적인 영화다.

술 마시는 장면,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 거울을 보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절제된 연출 덕분에, 모든 장면이 사진처럼 뇌리에 박힌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이라면, 그 시대에 무엇을 선택했겠느냐고.

 

총을 들겠는가?

아니면 손을 내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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