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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의 잃어버린 연인을 찾으러 떠난 여정 속에서 새로운 사랑과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며 현실로 돌아오는 기적을 맞이하는 이야기.
1. 영화 개요
제목 : 리스트커터스-러브스토리 ( Wristcutters: A Love Story)
장르 : 코미디, 판타지
감독 : 고란 뒤키치
주연 : 해트릭 후짓, 샤닌 소세이먼
개봉 : 2006년, 미국
2. 줄거리
지아는 작은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욕실로 들어가 면도날로 양 손목을 긋는다.
탁자엔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몇 장의 사진이 놓여 있고, 창밖에는 움직임이 없는 늦은 오후의 빛이 걸려 있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지만, 다음으로 눈을 뜬 곳은 지옥도 천국도 아닌, 어딘가 이상한 다른 세계였다.
그곳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거의 비슷해 보이지만, 어딘가 빛이 빠져나간 것처럼 색이 옅고, 사람들의 표정은 무기력하며, 모든 것에서 미묘하게 생기와 온기가 없다.
이 세계는 자살한 사람들이 모이는 세계. 기묘한 건, 그곳의 하늘엔 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희미하고 둔탁하며, 무엇보다 웃음이라는 것이 없다.
지아는 이 세계에서 사는 것에 그리 큰 애착이 없다. 어차피 죽었고, 어차피 다시 살 수도 없다.
어느 날, 현실에서 깊이 사랑했지만 여러 갈등과 상처 속에서 이별했던, 죽을 때까지 사랑했고 잊지 못한 연인 * 디디 * 가,
자신이 죽은 뒤 뒤를 따라 동일하게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충격 속에서 작은 희망을 붙인다.
“그래…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 있을 거야. 아직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이 음울한 세상에서 디디의 영혼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지아는 기묘한 여행을 시작하며 우연히 한 남자와 만난다. 조금은 산만하고 미스테리한 러시아 남자 * 미셸 * .
미셸은 삶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지만, 이곳에서도 여전히 본인의 친구들과 가족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그는 새하얀 반바지를 입고 구식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데, 차량 라디오에선 늘 흐릿한 노이즈가 섞인 음악이 흘러나온다.
둘은 서로의 목적지를 위해 동행하기로 결심한다. 이들의 여행길은 고속도로가 끝없이 이어지고, 휴게소는 어두컴컴하며, 주유소의 불빛마저 희미하게 깜빡이는 기묘한 풍경 속에서 진행된다.
그러던 중, 길가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던 한 소녀를 만난다. 이름은 *맥*.
그녀는 이곳에 “실수로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난 자살한 게 아니야. 이곳은 잘못된 곳이야. 돌려보내줘야 해.”
그녀는 당차고 솔직하고, 지아가 보기엔 조금은 불안정하면서도 어딘가 빛나는 사람이었다.
지아, 미셸, 그리고 맥. 이렇게 셋의 기묘하고 허무주의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여정 곳곳에서 그들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다. 어떤 이는 자살 당시의 상처를 그대로 갖고 다니고,
어떤 이는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또 어떤 이는 이 세계 속에서도 ‘기적’이라는 존재가 실재한다고 믿는다.
기적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미세한 변화들이 가끔 일어난다. 상처가 조금 옅어진다든지, 사물이 아주 조금 움직인다든지,
“이곳에선 그런 일은 없다고 했는데.. ”
그들은 천천히,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서적 균열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지아는 맥에 대해 조금씩 마음이 흔들린다. 그녀가 맑은 눈으로 말하던 어느 순간이 떠오른다.
“지아, 넌 아직도 살아 있는 것들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네.”
그 말은 그를 찌르듯 아프게 했지만, 동시에 위로였다. 어찌 되었든 그는 사랑을 잃은 남자였고,
그 사랑을 되찾기 위해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긴 여정을 지나 그들은 한 특이한 공동체에 도착한다.
그곳은 이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잔디밭과 평온한 분위기를 가진 장소였다.
사람들은 웃고, 기타를 치고, 서로 껴안았다. 이곳에서는 기이한 일이 가끔 일어난다고 했다.
미셸이 던진 작은 돌이 공중에서 멈춰 서고, 누군가는 물 위에 발끝을 대고 몇 초 동안 떠 있기도 했다.
이곳에서 지아는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디디가 여기서 살고 있어.”
그리고 그는 그녀를 마침내 마주한다.
디디는 지아를 보고 놀라지만, 그의 상상 속에 그려졌던 재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지아가 죽기 전에 알고 있던 그 모습과는 다르게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지아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그때.. 널 따라 죽은 게 아니었어. 그냥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된 거야.”
지아는 그 말에 가슴이 무너진다.
그는 디디를 위한 여정이라고 믿었는데, 그 사랑의 실체는 현실에서 이미 오래전에 부서져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지아는 깨닫는다.
여정을 함께하며 자신에게 미묘한 빛을 건네던 이는.. 맥이었다.
맥은 사실, 이곳에 실수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살 시도 중 의식이 잠시 멈춰 이 세계에 들어온 것이었다.
현실의 몸은 아직 살아 있었고, 이곳은 잠시 머문 ‘경계’ 상태였던 것이다.
맥이 갑자기 현실로 돌아갈 가능성이 생기자, 지아는 두려움과 애틋함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천천히 공기 속에서 투명해지기 시작하자, 그는 알 수 없는 힘으로 손을 뻗는다.
“가지 마… 아직 할 말이 있어.”
그러나 그녀는 미소를 남기고 사라진다.
지아는 정신이 혼탁해지고, 세계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으며 갑자기 깨닫는다.
자신 역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아는 어느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뜬다. 빈 방, 희미한 형광등, 그리고 한숨을 내쉬는 의사들.
그는 죽지 않았다. 단지 그 세계를 잠시 다녀온 것이다.
그리고 병실 문이 열리며 맥이 들어온다.
현실에서, 살아 있는 모습으로.
그녀는 지아를 보자마자 숨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뜬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바라본다.
그 순간, 둘 사이엔 이 세계 어디에도 없었을 만큼 단단하고 고요한 감정이 흐른다.
살아 있는 세계의 빛은 더 눈부셨고,
그 빛 속에서 지아는 처음으로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3. 특징
◐ 자살자들의 세계라는 독특한 설정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자살한 사람들만이 모인 세계'라는 환상적 설정이다.
이는 기괴하고 우울할 수 있는 소재를 의외로 따뜻하고 코믹하게 풀어냄으로써 현실과 판타지를 독특하게 섞어낸다.
이 세계는 현실과 거의 똑같지만, 별이 없는 하늘, 무기력한 사람들, 색이 빠진 풍경 같은 세부 요소들로 살아 있지 않음을 시각적으로 담아낸다.
◐ 로드무비 형식 속에 깃든 감정의 성장
지아, 미셸, 맥이 함께 떠나는 여행은 단순히 목적지를 향한 이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상처를 마주하고 다시 삶의 감정을 되찾는 과정이다. 여정의 ‘경유지’들은 모두 감정의 단계를 상징하며, 만나는 인물 각각이 지아의 정서를 한 걸음씩 변화시킨다.
◐ 코미디와 트래지디의 절묘한 조합
죽음과 자살이라는 무거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과하지 않은 블랙코미디를 깔고 있다.
이런 유머는 삶을 포기한 이들의 세계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웃고, 실수하고, 정서적 교류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영화의 무게를 부드럽게 한다.
◐ 상처를 품은 이들의 사랑 이야기
러브스토리라는 제목처럼 중심엔 사랑이 있다.
이는 가벼운 사랑이 아니라, 상처 속에서 다시 빛을 발견하는 사랑, 끝났다고 믿었던 마음이 새로운 사람을 통해 다른 형태로 깨어나는 사랑이다. 지아와 맥의 감정은 조용히 자라나며, 그것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이끈다.
◐ 삶으로 되돌아가는 선택의 의미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결국 이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다시 살아갈 의지'라는 점이다.
맥과 지아가 현실로 돌아오며 재회하는 결말은 단순한 기적의 연출이 아니라,
극한의 어둠 속에서도 다시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인간의 본성을 상징한다.


4. 감상문
영화는 스스로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모인 세계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는 여정을 그린다.
지아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떠났지만, 그 여정 속에서 처음으로 진짜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
자신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녀와 함께 현실로 돌아오는 기적을 선택했다.
어둡고 황량한 세계에서 시작된 이 사랑 이야기는
결국 “살아 있으니까 가능한 것들”에 대한 조용한 헌사처럼 남는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처럼 따스하게 그린 영화는 드물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 내부에 흐르는 온도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체온과 가깝다.
지옥도 천국도 아니고, 그저 색이 빠진 듯한 풍경과 은근한 무기력이 흐르는 세계. 그곳에 도착한 지아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죽음의 서늘함’ 대신, 삶의 잔재가 계속해서 남아 있는 묘한 애틋함을 마주하게 된다.
지아는 잃어버린 연인을 찾아 떠난다. 그 여정의 출발점은 미련이다.
자신이 죽으며 버린 사랑을, 다른 세계에서라도 다시 찾아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은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힘이 된다. 그러나 여정은 그가 상상했던 재회로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길 위에서 그가 만나는 것은 다른 사람들, 다른 상처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의 잔해들이다.
맥과의 만남은 특히 인상 깊다. 그녀는 이 세계의 분위기와 달리 밝은 생기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말투와 눈빛엔 아직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섬세함이 있다.
그래서일까, 지아는 처음엔 그녀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그를 향해 들어오는 온기가 너무 생생해서, 그것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자신의 마음이 죽음의 그림자에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이 이어지며 둘 사이엔 아주 작은 틈이 생긴다.
어떤 말이나 사건으로 생긴 틈이 아니라, 함께 걷고 바라보고 머무는 동안 조금씩 열리는 틈.
그 틈은 디디를 향한 미련이 점차 흐릿해지고, 지아의 마음속에 새로운 감정의 빛이 깃드는 시작점이 된다.
영화는 이 감정의 물결을 과장하지 않고, 섬세하게, 아주 미세한 숨결로 그려낸다.
한편 디디와의 재회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여행은 정말 그 사랑을 되찾기 위한 것인가?' 지아는 결국 디디를 찾지만, 그녀는 그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모습과 달라져 있다. 그 순간 지아는 깨닫는다.
여행은 디디에게 가는 길이 아니라, 디디가 없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맥이 사라지는 순간, 지아는 죽음의 세계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던 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현실로 돌아가는 장면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정서의 종착지다.
그녀는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삶의 문턱을 새로 연 것이다.
마지막 병실 장면에서 눈을 뜬 지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맥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둘 사이에 흐르는 정적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조용한 숨이다.
적막 속에서 따뜻함이 피어오르는 장면. 그 순간은 이 영화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응축된 장면이다.
죽음의 세계는 사라졌지만, 그 세계에서 배운 감정은 그대로 살아 있다.
사람은 때때로 절망 속에서 길을 잃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빛을 향해 움직이려는 존재이고.
그리고 사랑이란,
때로는 죽음도 뛰어넘어 우리를 다시 살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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