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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은 남자가 고대 무덤과 현실의 틈에서 자신의 슬픔과 환영을 마침내 받아들이게 되는 여정을,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그린 영화.
1. 영화 개요
제목 : 키메라 (La Chimera)
장르 : 어드벤처, 코미디, 멜로
감독 : 알리체 로르바케르
주연 : 조시 오코노, 캐롤 두아르테, 이사벨라 로셀리니, 알바 로르바케르
개봉 : 2024년,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2. 줄거리
기차가 천천히 역으로 들어오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흐린 하늘 아래, 낡은 객차에서 한 남자가 몸을 일으킨다. *아서*.
그는 어딘가를 오래 떠났던 사람처럼 피곤한 그림자를 짊어진 채, 한쪽 어깨에 낡은 가방을 걸고 플랫폼 위로 내려선다.
주변은 적막하고, 느릿한 바람만이 허공 속에서 비틀린다. 그의 얼굴에는 미묘한 기대와 침잠된 슬픔이 교차한다.
오래전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가는 사람처럼.
아서가 향한 곳은 마을 외곽의 허름한 집. 그곳에는 늘 수다스럽지만 정작 속내는 감추고 사는 이탈리아 아주머니 * 플로라*가 산다. 그녀는 아서의 연인이었던 *비앙카*의 어머니다.
아서는 감옥에서 막 출소한 상태이며, 플로라는 그를 반쯤은 아들처럼, 반쯤은 손님처럼 맞아들인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백이 떠다닌다. 비앙카의 부재가 그 공백의 중심이다.
아서에게 비앙카는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을 구분 짓는 기준이자 깊은 상실의 원인이다.
플로라의 집은 마치 시간에서 떨어져 나온 곳 같다.
간혹 전기가 나가 촛불을 켜야 하고, 집 구석구석에는 비앙카가 남긴 물건과 흔적들이 있다.
아서는 그 흔적을 바라볼 때마다 숨을 잠시 멈춘다. 어느 순간 비앙카가 집 안 복도 끝에서 돌아설 것 같은 느낌.
그러나 현실은 잿빛이고, 그녀는 없다.
그가 자유를 찾았다는 소식은 곧 지하 약탈꾼 무리, 일명 ‘에트루리아 도굴단’에게도 퍼진다.
아서는 고대 유물을 찾아내는 데 있어 일종의 기이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땅속의 빈 공간, 묻힌 방, 오래된 석관의 위치를 직감처럼 읽어낸다.
그들은 아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서 역시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순간 무게를 잊는다.
이들의 활동은 마치 마을의 어스름 속에서 벌어지는 그림자 같은 일들이다.
밤이면 손전등 하나만을 켠 채 숲을 통과하고, 강둑을 건너고, 오래된 언덕 밑으로 파 들어간다.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이 만들었던 무덤은 검은 땅 속 깊이 숨겨져 있고, 그곳에서는 늘 흙냄새와 차가운 공기가 먼저 얼굴을 스친다.
어느 날, 아서는 무리와 함께 숲으로 들어간다. 그는 손으로 땅을 쓰다듬다 갑자기 멈춘다.
눈을 감고 어떤 보이지 않는 흐름을 느끼는 듯.
“여기야.”
짧은 한마디만으로 모두가 파기 시작한다.
잠시 후, 그들은 무덤 입구를 발견하고, 안쪽으로 들어가 고대 유물들을 훔쳐낸다. 토기, 장식품, 금박 조각.
그 순간 아서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친다.
그는 무덤을 모욕하는 듯한 이 행위에 마음이 움직이지만, 동시에 비앙카를 잃은 뒤부터 이어진 삶의 공허함을 채우는 유일한 행위처럼 느끼기도 한다. 마치 땅속에서 과거의 혼령들과 접촉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들의 약탈 행위는 지역 경찰과 문화재 감시팀의 눈에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와 있었다.
또한, 도굴품을 되파는 시장은 점점 더 잔혹해지고 있다.
유물을 삶으로 여기는 이들이 아니라, 단지 돈으로 환산하는 거래자들이 판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서 역시 이 세계에 엮여 있으나, 그 내부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그는 유물을 바라볼 때마다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본다.
플로라의 집에는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집안일을 돕고 플로라를 돌보는 젊은 여성 *이탈리아*.
그녀는 아서를 조용히 바라본다. 아서는 처음엔 그녀를 불편해하지만, 점차 그녀의 천진함과 진심 앞에서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진다. 그녀는 아서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나요?” 아서가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
그는 비앙카의 흔적과, 잃어버린 삶의 방향을 찾고 있었으나 그것을 말로 꺼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서와 도굴단은 큰 거래를 위해 결정적인 유물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는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완전한 무덤’이 있을 것 같은 언덕으로 간다.
그곳은 바람이 기이하게 불고, 풀들은 마치 숨을 쉬듯 흔들린다.
아서가 땅을 짚고 지나가자, 그의 손끝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그는 도구를 들고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말로, 그 아래에서 에트루리아 시대의 완벽한 무덤이 드러난다.
벽화는 색을 잃지 않았고, 석관은 거의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무덤 앞에서 멈춰버린다.
도굴보다는 ‘만났음’에 가까운 감정.
고대의 죽음을 훼손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라, 그 죽음 속에서 어떤 메아리를 들은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는 비앙카의 부재와 고대 죽음의 공간이 서늘하게 겹쳐지는 것을 느낀다.
도굴단은 아서를 재촉하지만, 그는 점점 더 그들의 세계와 멀어지고 있었다.
이후 아서는 경찰에 쫓기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도굴단과의 관계도 틀어지고, 플로라는 아서에게 비앙카와 관련된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 사실은 아서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무너뜨린다.
그는 더 이상 이 세계 어딘가에 비앙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
결말로 향하면서, 아서는 마지막으로 혼자 고대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토치 하나를 든 채, 천천히 통로를 지나고, 석관 앞에 선다.
그곳에서 그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환영을 본다.
비앙카가 부드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듯한 장면.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만, 손끝은 허공을 스친다.
무덤의 써늘한 공기만이 그의 피부를 감싼다.
그가 바깥으로 나왔을 때, 아침 햇살이 언덕 위로 스며든다.
그 빛은 어둠 속을 오래 걸어 나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묘하게 따뜻하고 서늘한 빛이었다.
아서의 여정이 끝났는지, 혹은 이제 시작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처음 기차에서 내릴 때의 피곤한 표정과 조금 달라져 있다.
비슷한 슬픔을 품고 있지만, 그 슬픔을 받아들이기로 한 사람의 표정.
결코 닿을 수 없는 욕망, 영원히 따라다니는 환영을 쫓던 남자가,
그 환영을 비로소 내려놓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3. 특징
◐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르는 로르바케르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
영화는 실제 고대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단의 범죄적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장면 곳곳에서 비현실적 감각을 삽입한다.
카메라가 돌연 속도를 바꾸거나, 인물들이 상징적으로 배치되며, 아서가 느끼는 ‘지하의 울림’은 초자연적인 영감처럼 연출된다.
현실과 비현실의 미묘한 경계가 한 화면에 스며 있어, 영화는 마치 꿈과 현실 사이의 불투명한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고고학적 유산과 현대 사회의 착취 구조
로마 제국 이전의 에트루리아 유물들은 이탈리아의 오래된 상처이자 문화적 뿌리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유물이 현대 사회에서 돈으로 환산되어 거래되는 현실을 비춘다.
유물은 과거의 기억과 영혼을 담은 ‘무덤의 소리’임에도, 현대의 불안정한 삶과 생계 앞에서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린다.
문화재를 둘러싼 양심·범죄·윤리·생존의 모순적 감정이 화면 속을 교차한다.
◐ 상실을 품은 남자의 ‘치유 아닌 체념’의 여정
아서는 비앙카의 부재라는 깊은 상실 위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무덤을 파헤치며 고대의 죽음을 만질 때마다 자신의 슬픔 깊숙이 있는 어둠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슬픔을 극복하는 치유’를 그리지 않는다.
대신 ‘슬픔을 인정하는 체념’의 흐름을 그린다.
아서의 여정은 회복으로 닿지 않고,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으로 도달한다.
◐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이탈리아적 풍경의 마법
토스카나의 언덕, 오래된 돌길, 퇴색된 집들, 비어 있는 풍장지, 이 모든 배경은 죽음과 삶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과거와 현재, 인간과 혼령, 욕망과 허무가 뒤섞여 있어, 이 공간 자체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 ‘없음’의 존재감 – 비앙카라는 보이지 않는 중심
영화에서 비앙카는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그녀는 서사의 중심이다.
모든 인물의 감정과 행동은 비앙카의 부재로 인해 파생된다.
감독은 ‘없는 사람이 가장 무겁게 존재하는 방식’을 섬세하게 구축한다.


4. 감상문
아서는 흙먼지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사랑을 잃고, 세계에 온전하게 속하지 못한 채, 오직 땅속의 흔적 속에서만 자신을 찾는 사람. 그의 걸음은 늘 조금 기울어 있고, 그의 손끝은 자주 떨리며, 그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본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있으면서도 언제든 비앙카가 있는 ‘저편’으로 사라질 수 있는 경계 위에 서 있는 듯하다.
로르바케르의 세계는 어쩐지 따뜻하면서도 차갑다. 햇빛이 토스카나 언덕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때도, 그 빛은 어딘가 서늘한 그림자를 동반한다. 카메라가 좁은 골목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질 때, 화면 밖에서 오래된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그 모든 소리 바람, 먼지, 땅속의 공기 떨림이 살아 있는 생명처럼 느껴진다.
그 속에서 아서는 매번 ‘무언가의 부름’을 듣는 사람처럼 동작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무덤을 파헤치는 장면들은 잔혹하다기보다 경건하다.
도굴단은 결코 성스러운 존재가 아니지만, 그들이 발견하는 무덤 속 색채들과 유물들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동시에 슬픔을 품고 있다. 그것은 이미 끝난 시대의 목소리이고, 그 목소리를 더듬는 순간 아서는 ‘죽음의 세계’와 가장 가까워진다.
어쩌면 그는 유물을 파헤치러 간 것이 아니라, 비앙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어둠 속으로 간 것인지도 모른다.
이탈리아라는 이름의 소녀는 영화에서 가장 밝은 존재다.
그녀는 아서를 바라보며, 그에게 살아 있는 현재의 손을 내민다.
그러나 아서는 그 손을 완전히 잡지 못한다.
비앙카가 남긴 상처는 단순한 사랑의 상실이 아니라, 시간의 균열을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균열 속에서 아서는 여전히 그녀를 보고, 그녀의 발소리를 듣고, 그녀의 웃음을 떠올린다.
살아 있는 사람의 온기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드는 슬픔의 크기가 있다.
이 영화가 인상 깊게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이 ‘부재의 무게’를 다루는 방식이다.
로르바케르는 상실을 치유하거나 극복시키지 않는다.
사람은 때로 어떤 슬픔을 품고 살아가야 하며, 그 슬픔은 삶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일부가 된다고 말한다.
마지막, 아서가 무덤 속에서 붉은 실을 통해 비앙카와 ‘재회’하는 듯한 환영을 본다.
이 재회가 실제 돌아옴인지, 또는 그의 기억·환영 속 허상인지 영화는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그 순간은 아서의 마음속 어둠이 마지막으로 흔들리는 순간이며,
그 흔들림 이후 그는 비로소 현실 위에 발을 내려놓는다.
인간이 어떻게 상실을 견디며,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걸어가는지를 가장 고요하고도 충만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는 부재가 남긴 상실의 공간과 그리움의 무게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
그 환영은 사라지지 않지만, 언젠가 우리는 그 환영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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