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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이라는 ‘제도적 무대’에서 버텨온 다이애나 비의 고통과 회복, 그리고 용기를 그린 이야기.
1. 영화 개요
제목 : 스펜서 (Spencer)
장르 : 드라마
감독 : 파블로 라라인
주연 : 크리스틴 스튜어트(다이애나역)
개봉 : 2021년, 영국, 미국
2. 줄거리
◐ 왕실에 도착하기 전 – 침묵의 긴장감
영화는 추운 겨울, 영국의 들판 위로 달리는 차량과 함께 시작된다.
잿빛 하늘 아래, 먼지 날리는 전원도로를 따라 몇 대의 차량들이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다이애나가 타고 있는 차량이 아니다. 화면은 그녀가 혼자서 자신의 스포츠카를 몰고 왕실 별장 *샌드링엄 하우스*로 향하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운전을 하면서도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주유소에서 지도를 묻는 그녀는 점점 *혼란스러운 내면*을 드러낸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왕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자리. 다이애나는 평소보다 더 불안하고 예민해져 있다. 차창 밖의 풍경은 삭막하고, 주변 인물은 말수가 적고 감시하듯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가 샌드링엄 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모든 것이 정해진 듯한 분위기다. 식사 시간, 드레스 코드, 동선, 발언권까지 모든 것이 규칙 속에 짜여 있다. 이 공간에서 다이애나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왕실 시스템의 부속품처럼 여겨진다.
◐ 크리스마스의 의식, 그리고 침묵 속의 고통
다이애나는 남편 찰스 왕세자,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부부 관계는 이미 얼어붙은 상태다. 찰스는 그녀와 거의 말을 섞지 않고, 오히려 왕실 전속 요원 *그레고리 대령*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감시자로 등장한다.
왕실은 다이애나에게 크리스마스를 위한 일정표, 드레스 코드, 식사 순서 등을 철저하게 요구한다.
"당신은 상징입니다."라는 말이 그녀를 옥죄인다. 그녀는 자신이 다이애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웨일스의 왕세자비’라는 역할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실감한다.
밤이 깊어지며 다이애나는 식사 자리에서 혼란을 겪는다. 큰 식탁, 조용한 분위기, 절제된 웃음들 속에서 그녀는 토할 듯한 압박감을 느끼고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이 장면은 *거식증과 정신적 고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장면이다. 스튜어트는 그 불안과 공황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 팬텀과 현실 – 앤 불린의 유령
영화는 점점 다이애나의 정신 상태를 중심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진입한다.
그녀는 성 내부에서 헨리 8세의 아내였던 '앤 불린'의 유령을 보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남편에게 버림받고 죽음을 맞이한 앤 불린의 존재는 다이애나가 느끼는 왕실 내 고립감과 배신감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앤 불린은 영화 내내 실제로 등장하거나, 거울 속, 그림 속, 혹은 환상처럼 나타나며 다이애나에게 말을 건다. 이 유령은 다이애나가 무너져가는 자아를 붙잡으려는 한 조각의 내면이자, 동시에 그녀가 견디는 왕실의 폭압적 구조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다.
현실과 환상이 모호해진다.
◐ 어머니로서의 자아 – 유일한 숨통
영화에서 유일하게 따뜻함과 희망이 있는 순간은 그녀가 아들들과 함께 있을 때다. 윌리엄과 해리는 어머니를 진심으로 아끼고, 다이애나는 아이들 곁에서만큼은 마음을 놓는다. 새벽에 몰래 침대 속에 함께 들어가 이야기 나누고, 비밀스러운 놀이를 하며 웃는다. 하지만 이 시간조차도 감시 아래 있고, 그레고리 대령은 이들을 불러내며 규칙을 강조한다.
이 대조는 영화의 핵심이다. 자유로운 인간 다이애나와, 제도 속의 역할인 왕세자비사이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분열된다.
자녀는 다이애나에게 유일한 생명의 끈이자, 그녀가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 자유를 향한 탈출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다이애나가 결단을 내리는 순간이다.
그녀는 수십 년간 이어진 전통 의식과 예절, 왕실의 권위와 상징으로부터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어두운 새벽, 왕실 별장을 빠져나와 버려진 자신의 어린 시절 집으로 향한다. 그곳은 현재는 폐허가 되었지만, 그녀의 진짜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다. 침묵 속에서 집 안을 걷고, 어릴 적 입었던 재킷을 입으며 자신을 다시 마주한다.
그녀는 두 아들을 데리고 왕실을 떠나 햄버거 가게로 향한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세 사람은 환하게 웃는다.
3. 특징
▣ 전기 영화가 아닌 "정신극(Biographical Fable)"
《스펜서》는 일반적인 전기 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다이애나 왕세비의 삶 전체를 보여주지 않고, 오직 3일간의 크리스마스 휴가라는 짧은 시기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감독 파블로 라라인은 이 영화가 “전기적 우화(Biographical Fable)”라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 설정은 다이애나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해부할 수 있게 하며, 한 인물의 내면에 접근하는 밀도 있는 접근 방식을 가능하게 합니다. 실제 사실에 기반하되, 허구의 형식을 빌려 한 여성의 내면과 감정, 정체성 붕괴와 재건의 여정을 묘사합니다.
▣ 심리 스릴러적 연출 – 현실과 환상의 중첩
다이애나의 심리적 분열 상태를 극적으로 시각화합니다.
고요하고 엄격한 왕실의 분위기 아래, 다이애나는 환상과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앤 불린의 유령*이 등장하는 장면은, 실제 역사와 상징이 교차하는 매우 영화적인 장치입니다. 앤 불린은 왕에게 버림받고 처형당한 인물로, 다이애나는 그녀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운명의 공포를 느낍니다. 이러한 초현실적 연출은 인물의 내면을 시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감각적인 미장센과 음악 – 억압된 심리의 시각화
겨울의 왕실 저택을 냉소적인 색조와 정적인 구도로 그려냅니다.
대칭적인 구도, 문틈에서 몰래 엿보는 듯한 시선, 고정된 카메라는 감시받는 느낌을 줍니다.
자주 등장하는 긴 복도나, 닫힌 문, 거울과 그림들은 ‘자유롭지 못한 자아’를 상징합니다. 반면 야외 장면이나 어린 시절의 집에서의 색감은 훨씬 따뜻하고 생동감 있어, 진짜 다이애나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대비됩니다.
음악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불협화음을 적극 사용하고, 다이애나의 불안정한 내면을 리듬으로 표현합니다. 이는주인공의 심리 상태 입니다.
▣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인생 연기
이 영화에서 가장 극찬받은 요소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력*입니다. 단순히 닮았다 수준이 아닌, 정서와 에너지, 불안과 저항의 디테일을 온몸으로 표현해 냅니다.. 거식증, 자해 충동, 모성애, 회피, 유머, 분노… 그녀는 복합적이고 불안정한 인물을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게 연기합니다.
특히 목소리 톤, 눈빛의 흔들림, 대사의 망설임까지 조율하며 감정의 층위를 무너뜨리지 않고 유지합니다. 그 결과, 영화 내내 관객은 다이애나가 어떤 폭발을 일으킬지 모른 채 숨을 죽이며 따라가게 됩니다.
▣ 자아를 되찾는 여정의 우화
《스펜서》는‘인간 다이애나’가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이야기입니다.
초반부, 그녀는 전통과 격식의 갑옷 속에서 불안정하고 억눌려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아이들과 함께 햄버거를 사러 떠나는 그녀는, 그 짧은 장면 안에 자유, 사랑, 인간성, 웃음, 어머니로서의 본질을 모두 되찾습니다.
이 결말은 역사적 진실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다이애나의 내면에 존재했던 '탈출의 욕망'을 드라마틱하게 형상화한 것입니다.
▩▩ 《스펜서》 감상문 ▩▩
“동화 속 공주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다이애나의 삶"이 아닌, "다이애나의 내면"을 그린 영화다. 왕세자비로서의 삶 속에서 점차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한 여성이, 끝내 자아를 회복하고 탈출하는 과정을 심리적 공포극처럼 풀어낸 작품이다.
다이애나는 왕세자비도 아니고, 패션 아이콘도 아니다. 그녀는 ‘인간’이다. 그저 불안하고 외로운 사람, 그리고 아이들의 어머니다.
영화 속 다이애나는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다. 전통 의식에 맞춰 입어야 할 옷, 앉아야 할 자리, 먹어야 할 식단, 해야 할 표정까지 지정된 세계에서 그녀는 자신을 점점 잃어간다. 그리고 그 공허함을 마주하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은 가장 밑바닥까지 가라앉는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앤 불린의 유령*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다이애나의 내면에 쌓여온 억압과 불신, 공포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나’다. 앤 불린은 역사 속에서 남편에게 버림받고 죽임을 당한 왕의 아내였고, 다이애나는 그 운명을 자신과 겹쳐 보며 점차 정신적 균열을 일으킨다.
이런 구조 덕분에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긴 복도, 반복되는 의식, 갑작스러운 카메라 이동, 클로즈업된 다이애나의 얼굴 속 눈빛의 혼란과 정서적 비명이 이어지면서 관객은 그녀의 내면으로 빨려 들어간다. 심리적 이입의 경험 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를 통해 ,목소리 톤, 보폭, 표정, 손끝의 떨림까지 섬세하게 조율하며, 다이애나가 얼마나 억압받았고, 동시에 얼마나 인간적인 존재였는지를 처절할 정도로 보여준다. 거식증으로. 인해 토하는 장면, 울음을 삼키며 아이들을 끌어안는 장면, 마지막 햄버거 가게에서의 환한 미소까지, 그녀는 이 인물의 입체적 감정을 온전히 구현했다.
이 영화는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빌려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자기 상실’과 ‘사회적 역할의 폭력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가족 속에서, 조직 속에서, 어떤 ‘상징’이 되기를 강요받는 모든 사람들은 이 영화 속 다이애나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면, 아이들과 함께 햄버거 가게에 도착해 햇살을 받으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단순한 ‘탈출’이 아닌. '자기 선언'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직접 선택하겠다는 결심이다.
그녀는 더 이상 왕세자비가 아니다. 그녀는 다시 다이애나다.
"당신은 지금, 누구로 살고 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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