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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재난 이후에도 삶은 어떻게든 계속된다는 것을 조용히 목격하는 여정에 관한 영화다

 

 

1. 영화 개요

 

제목 :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And Life Goes On)

장르 : 드라마

감독 : 압바스 키아로스타

주연 : 파해드 커라드먼드, 부바 베이여

개봉 : 1992, 이란

 

2. 줄거리

19906, 이란 북부의 길란주와 마잔다란주를 강타한 진도 7.7 규모의 대지진5만 명에 가까운 생명을 앗아갔다.

압도적인 자연의 파괴 앞에서 사람들은 삶의 기반을 잃었고, 수많은 마을이 무너져 내렸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대지진 직후, 실제 피해 지역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무너진 땅 위에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조명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감독이 실제로 지진 이후 촬영지였던 *코케* 마을을 다시 찾으러 떠나는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인 감독은 자신의 실제 영화 속 아역 배우였던 *아흐마드**모하마드* 형제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어린 아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테헤란에서 북부 지진 지역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카메라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따라 천천히 이동한다. 무너진 집들, 임시로 지어진 천막, 길가에 모여 앉은 주민들,

하지만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대화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거나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감독 부자(父子)의 눈에 비친 파편화된 삶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하게 된다.

여정 도중, 감독은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아이들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도 집을 재건하고, 결혼식을 준비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지진 피해 지역을 통과하면서 감독과 아들은 수많은 낯선 이들을 만난다.

임시 천막 아래에서 살고있는 젊은 부부, 자전거에 타이어를 싣고 산길을 오르던 아이, 무너진 집터 위에 묻힌 사람의 묘지를 지키는 남자 , 새로 짓는 집에서 일하는 소년 노동자 , 그리고 폐허 위에 거처를 다시 짓고, 물통을 나르며 살아가는 수많은 주민들.

이 인물들은 모두 실제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자신의 삶 그대로를 보여준다.

 

특히나 인상적인 장면은, 결혼식을 치르고 있는 한 젊은 커플의 모습이다.

잔해 위에서 그들은 하얀 드레스와 수트를 입고 조용히 웃는다.

삶은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행복이 가능함을 조용히 증명해 보이는 듯하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 감독은 아들에게 말한다.

 "보렴, 저 사람들은 삶을 다시 시작했어. 집도 없고, 전기도 없지만, 웃고 있잖니."

 

이 짧은 대사는 영화 전체의 핵심 주제를 요약한다.

*삶은 계속되고, 인간은 결국 살아낸다* .

 

부자는 계속해서 산길을 돌고, 차량이 망가지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말을 섞는다.

이 여정은 단순한 수색이나 방문이 아니다.

감독은 길을 따라가며 삶과 죽음, 영화와 현실, 기억과 시간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어느 순간, 아이는 지친 듯 차에서 졸고, 감독은 폐허의 풍경을 바라본다.

멀리서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닭이 우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비닐 천막의 소리,

모든 것이 죽음이 아닌 삶의 존재 증명처럼 울린다.

 

그는 말한다.

영화를 찍는다는 건, 이런 걸 남기는 것일지도 몰라.”

이 대사는, 단순한 픽션의 재현이 아닌,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로서의 영화*를 말한다.

 

감독은 코케 마을에 도착하지만, 그가 찾고 있던 아흐마드와 모하마드 형제는 끝내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부재조차 영화에서는 큰 비극이 아니다.

왜냐하면 감독은 이미 그 여정 속에서 , 그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는 삶의 강한 기운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사람들을 통해 그 애들 살아 있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고, 그 말만으로도 충분했다.

 

부자는 다시 차를 몰고 떠난다.

그리고 길 위에서 감독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래, 삶은 계속되지.”

 

 

 

 

3. 특징

◐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 허물기

이 영화는 외형적으로는 극영화이지만, 구성과 촬영 방식은 다큐멘터리에 가깝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제 지진 생존자이며, 대사와 행동 역시 연출보다는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릅니다.

주인공 감독역할을 맡은 배우는 키아로스타미가 아니라 *배우 파르하드 케라이*이지만, 이야기 속 그 감독은  키아로스타미 자신입니다.

이처럼 *실제와 허구가 혼재된 내러티브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 이것이 연출인가, 실제인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게 만듭니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가 현실을 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 풍경과 여백의 미학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말보다 침묵, 사건보다 정지된 시간이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차창 밖 풍경, 산길을 오가는 사람들, 무너진 벽과 들판, 흐릿한 하늘 등을 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이 풍경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의 복원력과 인간의 지속성을 비언어적으로 표현하는 시적 장치입니다.

특히, 카메라의 시선이 인물을 정면으로 따라가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관조하는 방식은, 관객이 감정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사유하고 묵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집니다.

 

◐ 여정의 구조: ‘로드무비’로서의 삶의 은유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로드무비의 구조*를 따릅니다.

주인공 부자가 지진 피해 지역을 찾아가는 물리적 여정은, 동시에 인간 존재와 회복력에 대한 정신적 탐색입니다.

차가 고장 나고, 길을 헤매며, 낯선 이들을 만나는 과정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역설성과 우연성을 상징합니다.

주인공은 원래 목적지였던 , 아이들의 안부 확인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그 대신 삶은 지속된다는 진실에 도달합니다.

이처럼 목적지보다 여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구조,  메시지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전달시킵니다.

 

◐ 비극을 외면하지 않되, 강조하지 않는 윤리적 시선

대지진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감정의 과잉이나 피해자의 연민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는 피해자의 고통을 ‘소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자신의 삶을 복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춥니다.

울부짖음 대신, 삽질 소리, 아이의 웃음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윤리적 거리감은 , 관객 스스로 그 감정과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여백을 제공합니다.

 

◐ 삼부작 속의 자기 반영성과 형식적 실험

이 작품은 키아로스타미의 유명한 코케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1: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 허구적 이야기

2: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 - 그 이야기를 만든 감독의 현실 속 탐색

3: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 - 영화제작 현장을 다른 '영화 속의 영화'

 

이 삼부작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그의 영화 세계 중에서도 가장 조용하고, 성찰적이며, 인간적인 작품입니.

 

 

4. 총평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단순히 지진 이후의 기록이 아니다.

이는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 영화가 현실에 접근하는 방식,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담긴 작품이다.

 

눈에 띄는 슬픔도, 극적인 구조도 없다.

대신 폐허 속에서도 계속 움직이는 사람들, 집을 짓고, 장을 보고, 텐트 안에서 음식을 나누며, 결혼을 하고, 농사를 짓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담는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야말로 삶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영화는 소리치지 않으며, 결코 설명하지 않지만, 조용한 관찰 속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카메라는 멀찍이서 인물들을 따라가며, 관객은 그 거리감을 통해 오히려 더 큰 감정을 느끼게 된다.

 

 “당신이 폐허 속에 있을 때도, 삶은 계속될 수 있습니까?”

 

삶은 무너진 자리에서도 다시 자라고,

영화는 그 자라나는 순간을 *관조의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삶은 계속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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