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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로부터 끝없이 외면당한 한 인간이 이해받지 못한 고통 끝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리는 과정을 따라가는 비극적 초상.
1. 영화 개요
제목 : 조커
장르 : 스릴러, 드라마
감독 : 토드 필립스
주연 : 호아킨 피닉스
개봉 : 2019년, 미국
2. 줄거리
영화는 회색빛 도시 고담의 아침으로 시작된다.
거리는 더럽고,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으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분노와 피로가 묻어 있다.
그 한복판에서 아서 플렉은 거울 앞에 서 있다. 광대 분장을 하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그는 억지로 웃음을 연습하다가, 손으로 입을 찢듯이 눌러 미소를 만든다.
웃어야 살아남는 남자, 그러나 웃을 수 없는 남자의 얼굴이다.
아서 플렉은 광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거리에서 광고판을 들고 춤을 추고, 아이들을 웃기며 병원 행사에 참여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친절하지 않다.
아이들에게 장난을 치다 오히려 얻어맞고, 광고판은 훔쳐지고, 그는 구타당한 채 골목에 쓰러진다.
동료는 “자기 보호용”이라며 권총 하나를 건네준다.
그 작은 금속 덩어리는 이후 아서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이 바꾸는 씨앗이 된다.
아서는 어머니 페니 플렉과 함께 허름한 아파트에서 산다.
페니는 침대에 누워 TV 토크쇼 ‘머레이 프랭클린 쇼’를 보며 웃고, 아서는 그녀에게 밥을 차려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딘가 기이하게 밀착되어 있다. 페니는 늘 말한다. “토마스 웨인은 좋은 사람이야. 언젠가 우리를 도와줄 거야.”
그녀는 웨인에게 편지를 보내고, 아서는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서는 이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아서에게는 병이 있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긴장하거나 불안할 때 통제할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는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받으며 약을 처방받지만, 그 상담실은 차갑고 기계적이다.
사회복지사는 그의 말을 듣지만, 진심으로 듣는 것 같지는 않다.
아서는 말한다. “나 혼자 있는 느낌이에요. 제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사회복지사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어느 날, 병원에서 광대 공연을 하던 중 아서의 권총이 바닥에 떨어진다. 이 일로 그는 해고당한다.
동료는 그를 배신하고, 아서는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
퇴근길 지하철, 광대 분장을 한 채 집으로 돌아가던 아서는 술에 취한 월가의 젊은 남자들에게 시비를 당한다.
그들은 여성을 희롱하고, 아서를 조롱하며 폭력을 휘두른다.
바닥에 쓰러진 아서의 웃음 발작이 터지고, 그 순간 그는 권총을 꺼낸다. 망설임 끝에 방아쇠를 당긴다.
총성, 피, 비명. 세 명이 쓰러지고, 아서는 마지막 한 명을 쫓아가 계단에서 쏜다.
그 장면은 공포와 해방이 뒤섞인 얼굴로 끝난다.
이 사건은 곧 도시 전체를 흔든다.
부유층을 상징하는 월가 직원들이 광대에게 살해되자, 고담에는 “부자 대 가난한 자”의 분노가 번진다.
광대 가면을 쓴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아서는 자신도 모르게 어떤 상징이 되어 간다.
그는 텅 빈 화장실에서 천천히, 마치 의식처럼 춤을 춘다.
그 춤은 기쁨이 아니라, 억눌렸던 무언가가 처음으로 숨을 쉬는 몸짓처럼 보인다.
아서의 정신은 점점 더 흔들린다.
그는 이웃 여성 소피와 관계를 맺었다고 믿지만, 영화는 어느 순간 그것이 그의 망상임을 드러낸다.
소피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아서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잃는다.
동시에 그는 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충격적인 진실에 다가간다.
페니는 토마스 웨인의 옛 연인이 아니었고, 아서는 입양아였으며, 학대 속에서 자라 뇌 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아서와 토마스 웨인의 만남은 차갑다. 웨인은 그를 단호하게 부정하고, “네 어머니는 정신병자야”라고 말한다.
그 말은 아서의 세계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병상에 누운 어머니를 바라본다.
그리고 베개를 들어 올린다. 이 장면은 분노보다도 깊은 절망에서 나온 선택처럼 보인다.
그는 어머니를 죽이고, 세상과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끊는다.
사회복지 예산 삭감으로 상담과 약물 치료도 중단된다. 아서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
그때 머레이 프랭클린 쇼 제작진이 연락해 온다. 아서가 클럽에서 한 스탠드업 코미디 영상이 방송에 사용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이었다. 관객의 웃음은 아서를 향한 비웃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쇼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출연 전, 그는 머리를 염색하고 완벽하게 조커 분장을 한다.
계단을 내려오며 춤을 추는 장면은, 더 이상 억눌린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받아들인 존재의 선언처럼 보인다.
스튜디오에서 그는 “조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인터뷰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아서는 사회의 위선을 말한다.
“사람을 짓밟아도 상관없지만, 내가 죽이면 문제죠?”
그리고 그는 생방송에서 머레이 프랭클린을 쏜다. 총성과 함께 쇼는 혼란에 빠지고, 아서는 체포된다.
하지만 그 순간, 고담은 폭동으로 뒤덮인다. 광대 가면을 쓴 군중은 경찰차를 전복시키고, 불길 속에서 아서를 끌어낸다.
그는 차 위에 올라서서 피로 미소를 그린다. 군중은 환호한다. 그는 처음으로 인정받는다.
마지막 장면, 아서는 정신병원 복도를 걷는다.
발자국마다 피가 묻어나고, 그는 간호사를 피해 도망치듯 복도를 달린다.
웃음소리가 울린다.
이 웃음은 더 이상 병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얼굴이다.


3. 특징
◐ 히어로 영화의 외피를 쓴 철저한 인간극
'조커'는 영웅도 악당도 아닌 한 인간의 삶을 끝까지 밀착해 따라간다.
액션과 서사는 최소화되고, 인물의 얼굴과 감정, 호흡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
◐ 사회적 폭력의 누적 과정을 보여주는 구조
영화에서 조커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지 않는다.
무시, 조롱, 방치, 제도적 실패가 층층이 쌓이며 한 인간을 벼랑으로 밀어낸다.
악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의 결과처럼 그려진다.
◐ 호아킨 피닉스의 신체 연기
대사보다 몸이 먼저 말한다.
굽은 어깨, 비틀린 걸음, 말라붙은 몸, 웃음 발작까지 그의 신체는 아서 플렉의 정신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조커는 연기라기보다 변형에 가깝다.
◐ 웃음의 전복적 의미
웃음은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며, 소통이 아니라 단절이다.
통제 불가능한 웃음은 이 사회가 아서를 얼마나 이해하지 않는지를 상징한다.
◐ 현실과 망상의 경계 붕괴
영화는 명확한 설명 대신 관객에게 혼란을 허락한다.
아서가 믿었던 관계와 기억이 무너질 때, 관객 역시 그의 정신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4. 감상문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그가 악인지, 피해자인지.
다만 한 인간이 어떻게 사회에서 밀려나 괴물이 되었는지를, 차갑고도, 슬프게 보여줄 뿐이다.
'조커'는 악의 탄생이 아니라, 외면당한 인간의 초상이다.
이 영화는 폭력적인 장면보다, 폭력에 이르기까지의 침묵과 방치를 더 길게 응시한다.
아서 플렉은 특별히 악하지도, 특별히 강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그저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겨우 숨을 쉬며 살아가는 존재다.
문제는 이 사회가 그런 사람을 끝까지 외면한다는 데 있다.
아서의 웃음은 처음부터 비극적이다.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광대 분장을 한 남자가, 정작 웃음을 통제하지 못해 고통받는다는 설정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아이러니다. 그는 웃기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 웃음은 늘 오해와 폭력을 불러온다.
지하철에서, 상담실에서, 거리에서 그의 웃음은 도움의 신호이지만, 누구도 그것을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두는 불편해하고, 눈을 돌리고, 귀를 막는다.
이 영화가 잔인한 이유는, 아서가 무너지는 순간보다도 그 이전의 장면들 때문이다.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는다. 사회복지사는 정해진 질문을 반복하고, 약은 숫자로만 관리된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기능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통은 예산 삭감이라는 말 한마디로 지워진다.
이 무심함이야말로 영화 속 가장 큰 폭력이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이 모든 과정을 말없이 증명한다. 그는 울지 않는다. 대신 몸이 먼저 망가진다.
점점 말라가는 몸,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 어색하게 접힌 팔과 다리는 아서가 세상에 맞지 않는 존재임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의 변화는 특히 인상적이다.
초반의 계단은 무겁고 고통스럽지만, 후반의 계단은 광기 어린 해방의 무대가 된다.
같은 공간이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바뀌는 순간, 관객은 아서가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음을 직감한다.
조커는 미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쉽게 단죄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태도는 냉정하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보라”고 말할 뿐이다. 그래서 관객은 불편해진다.
우리는 그를 이해하게 되지만, 동시에 그를 지지할 수는 없다. 이 모순된 감정이 영화의 핵심이다.
마지막에 군중 속에서 환호받는 조커의 모습은 섬뜩하다.
그는 처음으로 인정받지만, 그것은 파괴 속에서만 가능한 인정이다. 이 장면은 질문처럼 남는다.
만약 그가 그 이전에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이해받았다면, 이 결말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영화는 대답하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우리를 바라본다.
'조커'는 악당의 기원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고통이 어떻게 괴물이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난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웃음소리처럼, 오래 귓가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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