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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아

 

한 여자가 들은 정체 모를 소리를 따라가며 현실과 꿈, 기억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각적 여정을 통해, 존재와 세계의 울림을 탐구하는 시적이고 명상적인 체험의 영화.

 

1. 영화 개요

제목 : 메모리아 (Memoria)

장르 : 드라마

감독 :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주연 : 틸다 스윈튼

개봉 : 2021년, 콜롬비아, 타이, 멕시코, 프랑스, 독일, 카타르

2. 줄거리

한밤중 어둠 속, 제시카는 침대에 누워 있다.

그리고  .” 세상이 울린다.

그 소리는 거대한 금속이 땅속에서 울린 듯, 동시에 하늘이 갈라진 듯한 묘한 울림이다.

그녀는 놀라 깨어난다.

방 안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진동이 그녀의 귀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제시카는 콜롬비아의 메데인에 머물고 있다. 그녀는 외국인, 타지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이다.

그 새벽의 충격음 이후, 그녀의 삶은 조금씩 뒤틀린다.

새벽의 고요함은 더 이상 고요하지 않고, 도시의 모든 소음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제시카는 소리의 정체를 찾아 헤맨다.

그녀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병원으로 가지만, 병실의 냉기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하는 울림이 반복된다.

언니는 병상에 누워있고, 깨어있는 듯, 잠든 듯, 시간의 감각이 모호하다. 제시카는 그 곁에서 손을 잡고 조용히 묻는다.

이 소리, 들려?”

언니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모니터의 신호음만이 울린다.

 

며칠 후, 제시카는 사운드 엔지니어인 에르난을 만난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들은 소리를 재현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건, 마치 콘크리트 속에서 커다란 돌이 부딪히는 소리예요. 하지만 약간.. 금속의 울림도 있어요.”

그는 컴퓨터 앞에서 여러 음향을 섞어 재현을 시도한다.

그녀는 눈을 감고 듣는다. “조금 더 둔탁해요. 더 깊은 데서 올라와야 해요.”

반복되는 시도 끝에, 그녀는 순간 눈을 크게 뜬다.

이거예요. 이 소리예요.”

그 짧은 순간, 그녀의 얼굴엔 안도와 두려움이 동시에 스친다.

 

하지만 그 소리가 재현된 뒤, 에르난은 사라진다. 연락도, 흔적도 없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제시카는 혼란스러워한다.

내가 그를 상상했을까?”

그 순간부터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완전히 흐려놓는다.

 

제시카는 도시를 떠돌며 이상한 경험을 한다.

도로 옆의 트럭이 멈출 때마다 그 충격음이 들리고, 시장의 사람들 대화가 멀리서 울려 퍼지듯 번진다.

마치 도시 전체가 그 소리를 되뇌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거리의 돌계단,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 심지어 오래된 고대 유물 속에서도 그 기억의 진동을 느낀다.

 

카메라는 그녀를 따라가지만, 그녀의 시선보다 조금 뒤에서 머문다.

마치 그녀의 의식이 아닌, 시간 자체가 그녀를 관찰하는 듯하다.

감독의 카메라는 언제나 정지해 있고, 인물은 화면 안에서 서서히 사라지거나 다시 나타난다.

 

그녀는 어느 날 고고학자 친구와 함께 선사시대의 무덤 발굴 현장을 방문한다.

땅속에서 드러나는 고대인의 유골을 보며 제시카는 묘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 사람도, 그 소리를 들었을까요?”

그 순간, 또다시  .”

대지는 숨을 내쉰 듯 흔들리고, 새들이 하늘로 흩어진다.

 

그녀는 도시를 떠나 산속 마을로 향한다. 넓게 흐르는 강가, 잔잔한 나무의 그림자, 그리고 끊임없이 울리는 벌레 소리.

그곳에서 또 다른 에르난을 만난다. 그는 강가에서 생선을 손질하며 조용히 말한다.

나는 모든 걸 기억해요.”

그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눈빛으로 그가 단순한 인간이 아님을 느낀다.

 

그는 말한다.

이 돌은 오래전에 누군가의 기억이에요.

누가 울면, 그 울음이 흙에 스며들고, 시간이 지나면 돌이 돼요. 나무도, 바람도, 그걸 기억해요.”

그녀는 그의 옆에 앉아 귀를 기울인다.

바람이 스치고, 잎이 흔들릴 때마다 세상의 미세한 진동이 들린다.

 

그는 말을 멈추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제시카도 눈을 감는다.

그리고 영화는 거의 10분간 정적에 가까운 장면을 이어간다. 그 정적 속에는 온갖 소리가 들린다.

바람, , 먼 곳의 물소리, 나무줄기 속의 진동. 그 모든 소리가 겹쳐지며 하나의 거대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소리.

 

이번엔 제시카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얼굴엔 눈물이 흐른다.

그 소리는 더 이상 공포의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이 땅의 기억, 시간의 잔향, 그리고 자신이 속한 세계의 울림과 연결되었다는 신호다.

 

그녀는 깨닫는다.

그 소리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의 기억, 그리고 지구 그 자체의 기억이었다.

그 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이 세계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그 일부임을 느꼈다는 뜻이었다.

 

제시카는 조용히 앉아 있다. 바람이 부는 풍경 속, 카메라는 멀리서 그녀를 비춘다.

소리도, 음악도, 대사도 없다.

그러나 관객의 귀에는 여전히 그 진동이 남아 있다.

 

우리의 존재 전체가 살아 있다는 신호음.

 

3. 특징

◐ 느린 호흡과 정적의 미학

이 영화는 사건보다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인물의 움직임, 카메라의 시선, 공기의 떨림까지 모두 느릿하게 이어지며, 관객은 감각적으로 그 시간 안에 머물게 된다.

 

◐  소리가 중심이 된 세계 인식

제시카가 들은 정체 모를 소리는 단순한 환청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잇는 통로이다.

이 소리를 통해 존재의 기원과 기억의 층위를 탐색한다.

 

◐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해체

현실과 환상이 자연스럽게 섞인다.

인물의 기억, , 그리고 대지의 숨결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지며, 관객은 경계가 사라진 세계 속에 들어간다.

 

◐  시각보다 청각, 서사보다 체험

메모리아보는 영화가 아니라 듣는 영화이다.

시각적인 사건보다 소리, 정적, 바람의 흐름 같은 감각적 체험이 중심이 된다. 이이해하기보다 겪는 것이 중요하다.

 

◐  자연과 인간의 일체감

영화 속 제시카는 점점 자연의 일부가 되어간다.

, , 바람, 물소리 등 모든 요소가 인간의 내면과 대화하듯 공명하며,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게 한다.

 

◐ 기억과 시간의 순환 구조

기억은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생과 죽음이 뒤섞이고 반복되며, 시간은 하나의 거대한 원처럼 느껴진다.

 

◐  침묵의 언어

대사는 최소화되고, 침묵이 서사의 핵심을 이룬다. 그 침묵은 깊은 교감의 통로로 기능한다.

관객은 그 여백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과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  영화적 리얼리티의 확장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과 초현실적 감각을 교차시킨다. 현실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신비롭다.

이 모호한 경계가 영화의 독특한 긴장감을 만든다.

 

◐  존재에 대한 철학적 탐구

 나는 누구인가보다 나는 어디에 울리고 있는가를 묻는다. 존재를 설명하기보다, 존재의 파동을 들려준다.

 

◐  영화가 끝나도 남는 여운

마지막 장면 이후에도 하는 소리는 관객의 내면에 오래 남는다.

이는 기억과 감정의 진동으로 남는 체험의 잔향이다.

 

4. 감상문

'메모리아' 기억’ 존재’, 그리고 시간의 울림을 탐색하는 영화다. 

줄거리를 따라가며 사건을 해석하기보다는, 느린 호흡과 공간의 진동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체험하게 만드는 시각적·청각적 명상에 가깝다.

한 여성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좇아 자신이 누구인지, 이 세계가 어떤 시간 속에 존재하는지를 알아가는 감각적인 여정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가 아니라, 기억을 듣게 하는 영화. 

제시카가 들은 한 번의 충격음은, 인간이 세계와 단절된 순간의 흔적이자, 다시 세계와 연결되려는 몸의 반응이다.

감독은 스토리를 설명하는 대신, 정지된 시간과 미세한 소리의 틈을 통해 존재의 체험을 만들어낸다.

 

진짜 줄거리는,  제시카가 자신과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과정이다. 

그녀는 소리를 찾아 떠났다가, 결국 모든 소리가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 깨달음의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외로운 이방인이 아니다.

그녀는 이 땅의 기억, 이 행성의 호흡과 함께 존재하는 또 하나의 생명으로 깨어난다.

 

그리고 그때, 관객도 함께 듣게 된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그 울림을.

 

영화를 보는 동안 누군가 옆에서

지금 여기 있지?”라고 묻는 느낌이다.

 

제시카가 들은 그 소리, 그 정체를 밝히려는 여정은 사실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여정이다.

그녀는 귀로 듣지 않고, 몸으로 듣는다. 그 소리는 그녀 안의 상처이자, 세계의 기억이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나무, , 공기, 그 속에 스며든 오래된 시간들이

그녀의 귀를 통해 되살아난다.

감독의 세계에 현실은 언제나 꿈과 섞여 있다.

기억은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라, 대지와 하늘, 바람의 것이 된다.

 

메모리아기억의 소리를 듣는 영화. 그 소리는 누구에게나 다르게 울린다.

어떤 이에게는 슬픔으로, 어떤 이에게는 생의 기원으로.

너는 아직 여기 있다는 조용한 속삭임으로..

 

삶은 거대한 기억의 강이고,

우리는 그 안의 한 점의 파문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 남겨진 파문처럼

서로를 감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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