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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 마이 카

 

1. 영화 개요

제목 : 드라이브 마이 카  (Drive My Car)

장르 : 드라마,심리, 로드무비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주연 :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개봉 : 2021년, 일본

 

2. 줄거리 

 

도시의 새벽. 어슴푸레한 빛이 거실을 비춘다. 배우 *가후쿠 유스케(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카)*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그녀는 사랑을 나눈 직후,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의 단편을 조용히 말해준다.

그녀는 방송 작가이고, 그는 연극배우이자 연출가다. 부부는 조용한 신뢰 속에 살아가지만,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이 있다.

 

가후쿠는 어느 날, 우연히 아내가 다른 남성과 관계를 맺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는 묻지 않는다. 추궁하지 않고, 그대로 삼킨다. 그들에게 있어 말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어느 날, 가후쿠는 출장을 다녀오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일부러 귀가를 늦춘다. 그리고 그날, 오토는 급성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다.

말할 기회를 잃은 그는, “왜 그 이야기를 끝까지 해주지 않았느냐”, “당신은 왜 나를 떠나기 전에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끝내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간다.

 

2년이 지난 후, 가후쿠는 히로시마의 한 연극제에 연출가로 초청된다.

체호프의 바냐 삼촌을 다국적 배우들과 함께 올리는 프로젝트다. 배우는 각자의 언어로 연기한다. 일본어, 영어, 한국어, 대만어 등. 말이 달라도 감정은 전달된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언어와 감정의 경계를 실험하고자 한다.

 

행사 측은 그의 안전을 위해 운전기사를 붙인다. 그녀의 이름은 *미사키(미우라 토코)*. 23살의 말수가 적은 여성이다.

가후쿠는 자신의 붉은 *사브 900 자동차*를 무대처럼 소중히 여긴다. 그 안에서 대본을 들으며 연습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처음에는 타인을 허용하지 않던 그 차에, 이제 미사키가 조용히 앉아 운전대를 잡는다.

 

자동차 안, 오토의 생전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테이프가 흘러나온다. 그녀는 바냐 삼촌의 대사를 읽는다. 가후쿠는 여전히 그 목소리와 함께 연기한다.

미사키는 아무 말 없이 운전하고, 가후쿠도 조용히 연습한다. 말 없는 두 사람 사이에, 묵직한 공기가 흐른다.

 

가후쿠는 바냐 삼촌의 주인공을 오토의 불륜 상대였던 배우 * 타카츠키(오카다 마사키)*에게 맡긴다. 타카츠키는 젊고 감정이 뜨거운 인물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만, 때로는 충동적이다.

가후쿠는 마치 그를 통해 오토의 또 다른 얼굴을 탐색하려는 듯 보인다. 감정이 얽히고, 작품은 점점 무르익는다.

 

어느 날, 타카츠키는 가후쿠에게 오토와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녀는 몸을 나누고 난 후, 항상 이상한 이야기들을 들려줬다며, 그 이야기의 마지막을 자신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 순간 가후쿠는 깨닫는다. 자신도 끝내 알지 못한 아내의 진심, 그녀가 품고 있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그 *미완성의 관계*가 여전히 그의 삶에 맴돌고 있음을.

 

하루는 미사키가 가후쿠에게 조용히 말한다.

내가 죽게 했어요. 엄마를

 

미사키의 고향은 홋카이도의 눈 덮인 산골 마을. 그녀는 어릴 적 학대와 무관심 속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이중적인 인물로, 폭력과 사랑을 동시에 주며 미사키를 억눌렀다.

어느 날, 집이 무너지는 눈사태 속에서 미사키는 그녀를 구하지 않고 탈출했다.

그날 이후, 말하지 않은 죄책감이 그녀의 삶을 붙잡고 있다.

 

가후쿠와 미사키, 둘은 서로 말하지 못한 죄책감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죽은 이에게 사과할 수도 없고, 용서받을 수도 없는 이들은, 차 안에서 조용히 서로의 상처를 바라본다.

 

공연이 끝나고, 가후쿠는 미사키에게 제안한다.

당신의 고향에 가고 싶어요.”

둘은 함께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향한다.

이윽고 도착한 곳, 하얗게 눈 덮인 폐허.

무너진 집터 앞에서 미사키는 멈춰 선다.

 

하얀 눈, 붉은 차, 잿빛 하늘.

가후쿠는 말한다.

살아도 돼요. 우리, 살아도 됩니다.”

 

그 말은 미사키에게, 그리고 어쩌면 자신에게도 한 말이었다.

 

- 엔딩 -

미사키는 이국적인 도시에서 운전 중이다.

사브 900은 여전히 그녀의 곁에 있고, 뒷좌석에는 작은 개가 앉아 있다.

자동차 번호판은 바뀌었고, 계절은 따뜻해졌다.

마스크를 벗은 그녀의 얼굴엔, 고요한 평화와 작은 미소가 어른거린다.

 

그녀는 여전히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는 침묵에 갇혀 있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리듬으로 달리고 있다.

 

 

 

 

3. 특징

 

◐ 말하지 않는 것이 주도하는 감정 서사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대사가 아닌 침묵이 감정을 주도한다는 점이다.

많은 장면에서 인물들은 말없이 앉아 있거나, 차 안에서 아무런 교류 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과거, 죄책감, 상실, 용서, 슬픔이 켜켜이 쌓여 있다.

주인공 가후쿠는 아내의 죽음 이후 할 수 있었던 말하지 못한 말사이에 갇혀 살아가며, 이 영화는 그러한 침묵과 내면의 공명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진짜 감정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말은 오히려 감정을 숨기기 위한 도구일 수 있다.

 

◐ 자동차라는 공간의 상징성

영화에서 붉은 사브 900’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이 차는 가후쿠의 사적인 공간이며, 아내 오토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가 흐르는 기억의 장소이자, 연극 대사를 연습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자동차 안에서만큼은 감정이 절제되며, 인물들은 말보다 시간을 공유한다.

운전자 미사키와의 관계 역시 차 안에서 서서히 발전한다. 이는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차 안의 시간이 인간의 내면을 치유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움직이되, 도망치지 않는다”. 자동차는 상처를 짊어진 이들을 위한 정화의 공간이다.

 

연극 바냐 삼촌은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 한국어, 대만어 등 다양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각 배우는 자신의 언어로 연기하지만, 그 장면은 놀랍게도 하나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특히 청각장애인 배우 이윤아(한국 배우 박유림)의 한국수어 연기는 언어를 넘어선 감동을 준다.

이러한 설정은 언어가 다르더라도 인간의 감정은 통한다는 것을 넘어, 진짜 이해란, 말이 아닌 감정으로 전해지는 것임을 강조한다.

 

수어 장면은 말이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가장 깊은 감정을 전달한다.

 

◐ 하마구치 류스케 특유의 느림과 깊이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나 극적인 반전은 없다.

대신 감독은 카메라를 오래 두고, 공간을 비워두며 관객이 인물과 함께 생각하고 기다리게 만든다.

특히 드라이브라는 행위는 이 영화 전체의 리듬을 상징하며,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만든다.

그 결과,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여운 속에 머물게 된다.

 

◐ 죽은 자와의 대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가후쿠는 죽은 아내 오토의 대사 녹음을 반복해서 듣는다.

그것은 연극 연습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를 상상 속에서 계속 이어가는 행위.

 

또한 미사키 역시 어머니를 잃고 그 죄책감에 갇혀 살아간다.

이 영화의 모든 인물들은, 상실의 순간에 하지 못한 말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결국 직접적인 고백이나 화해 없이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말 없는 용서공존의 가능성을 찾는다.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함께 조용히 달리기 시작한다.”

 

 

4 총평 

 

이 작품은 상실과 죄책감, 용서와 회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격하지 않게 풀어내며, 관객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할 여백을 남긴다.

우리가 말하지 못한 채 가슴에 묻은 감정들을 대신 운전해 준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조용한 치유다.

관객은 붉은 사브의 뒷좌석에 앉아, 말없이 흐르는 음악과 공간, 감정을 따라가며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차 안이라는 밀폐된 공간은 인간의 내면, 상처, 기억을 드러내는 무대다.

말하지 못한 것들  말하지 않아도 닿는 감정들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차는 삶의 속도를 상징하고, 오토의 대사 테이프는 과거를 반복하게 한다.

하지만 미사키와의 만남을 통해 가후쿠는 처음으로 정면으로 상실을 바라보고, 삶을 다시 운전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우리는 모두, 미완의 감정들과 함께 살아간다.

이 영화는 그 감정들을 억지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준다.

 

"우리는 때로 말할 수 없어서, 조용히 달리는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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