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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의 내면 고통과 흔들림, 인간적인 갈등을 사실적이고도 시적으로 그려낸 걸작
1. 영화 개요
제목 : 만다라 (불법의 모든 덕을 갖춘 경지를 이르는 말)
장르 : 드라마
감독 : 임권택
주연 : 전무송, 안성기, 방희
개봉 : 1981년, 대한민국
2. 줄거리
끝없는 황야 위로 바람이 불고, 희뿌연 먼지를 품은 탁한 하늘 아래 스님 한 명이 걷고 있다. 먼지 낀 승복, 메마른 눈빛, 고요하지만 깊게 젖은 걸음. 그가 누구인지, 어디로 향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그는 그저 걷는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된다.
법운 스님의 여정은 외면상 ‘수행의 길’이다. 그는 교리와 계율을 철저히 따르려 한다. 속세를 단호히 떠났고, 삶의 의미와 존재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한다. 하지만 그 고뇌는 곧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번진다.
그는 기도하고 참선하며, 자신을 깨끗이 닦아나가려 하지만, 자꾸만 머릿속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고향에서 어머니를 버리고 나온 기억. 친구와의 마지막 눈빛.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스쳐 지나가는 욕망의 흔적들. 그는 그 기억을 단죄하려 하지만, 완전히 떨칠 수는 없다.
어느 날, 한 여인이 그에게 미소 지으며 다가온다. 손에는 국밥 한 그릇이 담겨 있고, 입가에는 “더 먹어요, 스님”이라는 따뜻한 말이 묻어 있다. 그는 침묵한다. 아니, 그는 괴로워한다.
그녀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그가 억누르려 했던 ‘사람으로서의 감정’의 상징이다. 부드러움, 따뜻함, 교감, 그리고 갈망. 법운은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림을 자기 자신에게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 순간, 관객은 안다. 그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흔들림이야말로 그가 진짜로 수행하고 있는 여정이라는 것을.
법운이 만난 지산 스님은 그와는 너무나도 다른 인물이다.
지산은 속세와 불교, 탐욕과 자비, 계율과 현실을 모두 넘나 든다.. 그는 술을 마시고, 여인과 동침하며, 도박장을 오간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무너진 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의 타락조차 수행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는 말한다.
“욕망 없는 인간이 어디 있나? 다만 그걸 어떻게 품고, 이해하느냐가 다를 뿐이지.”
법운은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승려의 신분으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고, 그건 불가의 수치라고,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내비친다. 하지만 지산은 미소 지으며 대꾸한다.
“너무 깨끗하게만 살려하면,, 언젠가는 그 깨끗함에 찔려 죽는다.”
지산 스님은 단순한 타락한 승려가 아니다. 그는 세상과 타협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려는 자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타락함으로써 다른 이의 고통에 다가설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방황은 타락이 아니라, 고통을 껴안는 또 다른 방식인 것이다.
법운은 처음엔 지산을 경멸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처럼 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깨닫는다.
자신도 완전히 깨끗하지 않다. 자신의 수행 역시 ‘이상을 향한 집착’으로 얼룩져 있었음을.
지산은 법운을 존중한다. 그 순수함과 고통의 깊이를 안다. 하지만 그는 안다. 그런 이상주의가 결국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감각을 마비시키고, ‘자비’라는 가장 중요한 불교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두 사람은 함께 길을 걷는다. 때로는 말없이, 때로는 다투며.
그러나 그 여정 속에서 둘은 서로의 거울이 되어간다.
지산은 법운에게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가르치고, 법운은 지산에게 ‘잊고 있던 정화의 감정’을 되살려준다.
둘 사이에 스승과 제자의 명확한 위계는 없다. 둘은 서로를 통해 배우고, 서로에게 흔들린다.
지산 스님은 홀연히 사라진다. 그는 더 이상 법운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너도 이제 알겠지”라는 말과 함께, 그는 길 위로 떠난다.
법운은 다시 길 위에 남는다. 이전과는 다르다. 그는 여전히 수행 중이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법, 타인을 이해하는 눈, 욕망과 이상 사이에서 길을 찾는 자세를 배워버렸다.
그는 더 이상 완벽한 깨달음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은 고통을 껴안고,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며, 계속해서 걷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어딘가의 절에서 종을 친다. 울려 퍼지는 종소리. 그 울림은 산과 강을 넘어 관객의 가슴으로 번져온다.
그것은 완성의 종이 아니라, 계속되는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3. 특징
◐ 불교적 세계관의 영화화, 현실과 깨달음이 교차하는 독특한 영화
『만다라』는 불교적 사유가 어떻게 인간의 삶과 갈등 안에 살아 숨 쉬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구도자들의 내면, 갈등, 흔들림, 그리고 인간적인 약함을 통해 진리의 추구를 그려낸다.
법운: 이상적이고 청정한 수행자, 그러나 내면의 흔들림을 안고 있다.
지산: 속세와 종교 사이를 오가며 삶의 진실을 체험으로 받아들이는 구도자.
두 인물을 통해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진리는 어떻게 살아야 닿는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 인간 존재의 고뇌를 담은 철학적 시나리오
정형화된 플롯이나 극적인 갈등 대신, 사유의 흐름과 인물의 심리 변화에 집중한다.
대사가 적고, 침묵이 많으며, 감정의 변화가 미묘하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 내면을 성찰하게 만드는 구조다.
형식적인 갈등 대신, 존재의 의미를 향한 내면적 추적.
명쾌한 결말이나 해답 없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나는 열린 결말.
삶과 수행, 욕망과 초월, 현실과 초현실의 흐릿한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 든다.
◐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시적 영상
산, 들, 절, 하늘, 바람, 빗소리. 이 모든 자연 요소들은 영화의 배경을 넘어, 인물의 심리를 투영하고, 불교적 무상성을 시각화하는 장치가 된다.
카메라는 사건보다는 흐름을 따라간다.
인간을 자연 속 미물처럼 담아내며, 초월과 무아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구현.
비구름이 몰려오는 산속, 고요한 계곡, 황량한 벌판 위를 걷는 승려의 모습은 마치 회화적 풍경화이자, 정신적 순례화
◐ 형식을 해체한 시간감
과거의 회상, 내면의 상념, 현재의 여정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반복되고 겹쳐진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명상 중 떠오르는 이미지의 흐름처럼, 사고의 자유 연상을 닮았다.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으로 이해하고,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구성.
4. 총평
『만다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하다.
그러나 지극히 강렬하다.
그 강렬함은 이야기의 힘이 아니라, 침묵과 사유, 흔들리는 인간 존재의 내면에서 나온다.
법운 스님을 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가.”
그가 지산 스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다시 묻는다.
“나는 나의 욕망을 부정하는가, 아니면 이해하려 하는가.”
이 영화의 감동은 이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공감에서 온다.
불교의 교리를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우리는 모두 사랑과 이별, 상처와 회한, 갈등과 집착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존재들이고,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싶은 갈망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법운과 지산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가.”
질문에 대한 정답을 주지 않지만, 그 질문 자체를 깊이 있게 꺼내어, 함께 걸어가게 만든다.
그 여정은 고요하고, 외롭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평화롭고, 깊은 자비로 가득하다.
만다라는 삶과 존재를 바라보는 영화다.
혼란스러워도, 흔들려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영화.
정답 대신, 그 정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마음 자체를 소중히 여겨주는 영화다.
함께 걷고, 함께 머물다 가는 영화다.
마치 한 편의 참선처럼.
당신 마음속의 만다라처럼.
인간 영화다
진리와 계율을 좇는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법운이고, 지산이며, 그 중간 어딘가를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너는 너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느냐.”
“진리를 좇는 그 길, 거기에 사랑은 남아 있느냐.”
깊고 고요하게 울린다.
마치 종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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