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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싱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탈북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 대한 기록이며애도이며증언.

 

 

1. 영화 개요

제목 : 크로싱

장르 : 드라마

감독 : 김태균

주연 : 차인표, 신명철

개봉 : 2008년, 대한민국

 

2. 줄거리

깊은 회색의 하늘 아래, 산골 마을이 조용히 숨을 쉰다. 바람은 차갑고, 거리는 적막하다.

북한 함경북도 어느 탄광촌.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 얼굴엔 희망보다 체념이 깊이 드리워져 있다.

그 속에 용수(차인표)가 있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이 땅은 그 사랑마저도 호사스럽다.

 

그의 아내는 '결핵'에 걸렸다. 그러나 약이 없다. 병원도, 의사도, 돈도 없다.

다만, 숨이 가빠오는 밤이면, 가슴을 부여잡고 이를 악물며 버텨야 한다.

용수는 이 현실을 뚫기 위해 결단한다.

국경을 넘는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 그는 생명을 건 여정을 선택한다. 그 길 끝엔, 단 하나의 목적이 있다.

약을 구하겠다. 반드시 돌아오겠다.”

 

국경은 산과 강으로 막혀 있다. 그러나 더 위험한 건 사람이다.

두만강을 건너는 그 순간부터, 그는 불법 월경자, 탈북자, 도망자로 바뀐다.

중국 땅. 낯선 언어, 낯선 얼굴. 여기선 숨죽이며 살아야 한다.

한 발 잘못 디디면 공안에 끌려가 북송, 고문, 강제 노동이 기다린다.

하지만 그는 돌아가야 한다. 아내에게, 아들에게.

 

그러나 그의 발길은 점점 돌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한다.

중국에서 만난 브로커는 그에게 말한다.

한국에 가면, 가족도 데려올 수 있어.”

그 말은 달콤했지만, 한없이 무거웠다.

그는 선택한다. 한국으로 간다.

그러나, 가족을 데리러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곧 벽처럼 굳어진 현실 앞에 부서진다.

 

북한에 남은 소년, 준이(신명철). 용수의 아들이다.

어린 그는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떠난 그날부터, 모든 세상이 낯설어진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탈북자라 부르며 손가락질하고, 어머니는 병세가 깊어지며 점점 말이 없어지고,

집엔 연탄도, 밥도, 약도 없다.

 

소년은 가난과 고독의 어른이 된다.

학교를 그만두고, 엄마의 약을 얻기 위해 시장에서 짐을 나른다.

어린 눈엔 세상이 너무 빠르고, 차갑고, 무섭다. 하지만 그는 믿는다.

아버지는 약을 가지고 돌아올 거야.”

 

그러나,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그 사이, 어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난다.

누워 있는 엄마를 깨우려 애쓰는 그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고통의 절정이다.

어린 소년의 떨리는 손, 눈물로 범벅된 얼굴,

그리고 끝내 외면하는 차가운 죽음.

 

그 순간, 준이는 결심한다.

내가 아버지를 찾아갈 거야.”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그것만으로 소년은 목숨을 건 탈북길에 오르게 된다.

 

철조망, 감시탑, 검문소, 개처럼 숨 쉬는 공포.

소년은 강을 건넌다.

땀과 눈물과 피로 젖은 그 강은, 자유로 향한 길이 아니라  또 다른 절망의 경계선이었다.

 

중국에서, 그는 이리저리 팔리듯 떠돌다 몽골 국경의 사막으로 향한다.

그곳을 넘으면 한국이란 희망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모래바람과 추위, 목마름이 소년을 집어삼킨다.

넘어진 그를 다시 일으켜줄 사람은 없다.

손끝에 닿을 듯한 그 거리, 하지만 도달하지 못하는 땅.

소년은 끝내, 그 사막에서 사라진다.

 

한편, 한국 땅에 도착한 아버지 용수.

그는 자유를 얻었지만, 가족이 없는 자유는 껍데기였다.

정부의 보호 아래, 임시 주거지에 머물며,

끊임없이 연락을 시도하지만, 아무 소식도 없다.

 

어느 날, NGO 단체로부터 연락이 온다.

당신 아들이 사막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는 울부짖는다.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

자신이 건너온 그 수많은 강과 경계가

도리어 가족과 자신을 영원히 갈라놓았음을 깨닫는다.

 

영화의 마지막,

용수는 낯선 강가에 홀로 선다. 그는 묻는다.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걸었는가.”

 

아내도, 아들도, 아무도 남지 않은 세계.

그가 죽도록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싶다, 단순하고 인간적인 바람.

 

그 바람은,

국가의 체제와 이념, 감시와 통제, 차디찬 국경과 사막에서

한없이 부서졌다.

 

 

 

 

3. 특징

◐ 현실 기반의 사실적 서사

크로싱은 수많은 실제 탈북자의 증언과 사례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탄광촌, 결핵 병동, 두만강, 중국의 불법 노동 현장, 몽골 사막, 이 모든 공간은 고통이 남긴 자국이자, 인간의 절망과 존엄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감정적인 과장 없이 담백하게 그려낸 장면들은 오히려 더 큰 진실을 드러낸다.

관객은 인물을 이해하기보다, 함께 무너지고, 함께 절규하게 된다.

 

◐ 탈북이 아닌 ‘사랑’을 중심에 둔 서사

이 영화는 단순히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거나, 탈북자 문제의 정치적 프레임을 전시하지 않는다.

가장 중심에 놓인 것은 한 남자의 사랑이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 국경을 넘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어린 아들이 또다시 국경을 넘는다.

이 모든 움직임의 동력은 공포나 이념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과 희생이다.

이 감정의 순수성이 영화를 비극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한 편의 깊은 휴머니즘 드라마로 완성시킨다.

 

◐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극적인 진심

차인표는 이 영화에서 배우가 아닌 용수그 자체가 되어 연기한다.

절규하지 않지만, 그가 서 있는 뒷모습만으로도 고통의 크기가 전해진다.

신명철(준이)의 연기는 더욱 특별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보기 위해 죽음을 건다.”

그 말은 준이의 숨소리, 발걸음, 떨리는 손끝에 다 들어 있다.

 

 

 

4. 총평

크로싱은 국가도, 체제도, 심지어 생명조차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무너지는 장면은 아내가 죽고, 아들이 떠나고, 그 사실을 훗날에야 알게 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영화는 눈물이나 음악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저 침묵. 그리고 한 줄기 바람, 흔들리는 눈빛.

그것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그 마음을 느낀다.

 

어린 소년이 몽골 사막에서 쓰러지는 장면은  침묵의 클라이맥스.

그 사막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국가가 버린 아이가 마지막으로 넘으려 했던 마음의 벽이다.

그 벽을 넘지 못한 채, 아이는 쓰러진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관에서 무너진다.

 

누군가에겐 사랑이 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목숨을 거는 모든 이들에 대한 증언

 

그 이야기는 지금도 중국 접경 지역의 강과 사막, 그리고 한국의 난민센터와 임시 거주지 어딘가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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