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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터썬

 

한 소녀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한 여름휴가를 기억하며그 속에 담긴 사랑과 슬픔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감정의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

 

1. 영화 개요

제목 : 애프터썬  (Aftersun)

장르 :드라마

감독 : 샬롯 웰스

주연 : 폴 메스칼, 프랭키 코리오, 셀리아 롤슨 홀, 케일리 콜먼

개봉 : 2023년, 영국, 미국

2. 줄거리

물이 잔잔하게 흔들린다.

햇빛은 수면 위에서 반짝거리고, 마치 오래된 캠코더처럼 색이 바래진 장면들이 하나둘씩 스친다.

화면 너머에서 누군가가 웃는다. "찍는다 웃어봐." 그녀가 카메라 앞에서 팔을 흔든다.

아버지가 웃고, 어린 딸은 장난처럼 혀를 내밀며 웃는다.

이건 오래된 기억이다. 혹은, 지금 막 떠오른 꿈 같기도 하다.

 

소피. 열한 살 소녀. 여름휴가.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아빠 캘럼.

그는 젊다. 스물한 살 많은 아버지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소년 같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눈빛은 깊고 조용하다. 어딘가 그늘이 있는 듯한 눈동자.

터키의 작은 휴양지. 리조트. 햇살. 물놀이. 맥주. 크림 바른 어깨.

그 여름, 소피는 그 모든 것보다 아빠의 옆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

 

소피는 침대에서 스르륵 굴러떨어지고, 아빠는 한밤중의 호텔방에서 담배를 문다.

창문은 열려 있고, 달빛이 바닥을 긁는다.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아주 멀리 있는 것. 말하지 않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소피는 그저 놀고 싶고, 웃고 싶다. 모든 걸 함께 하고 싶다. 스쿠버 다이빙, 당구, 카라오케.

아빠는 함께 한다. 웃고, 장난치고, 노래도 부른다. 그 모습은 완벽하게 사랑스럽다.

하지만 소피는 어쩐지 느낀다. 그 웃음이 자꾸 어딘가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웃는 얼굴 뒤에, 아주 깊은 구멍이 있다는 걸.

 

하루는 함께 파도에 몸을 맡긴다. 소피는 수영을 잘 못하지만, 아빠가 옆에 있으니 괜찮다.

그의 손이 잡고 있는 순간만큼은 바다도 무섭지 않다.

하지만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모든 것이 불안해진다. 파도, 바람, 물의 냄새.

소피는 그걸 기억한다. 그 느낌을. 그 여름의 한 조각을.

 

어느 밤, 아빠는 무언가 부러진 듯한 얼굴로 호텔 방에 들어온다. 손에는 깁스. 누구에게 말도 안 한다.

소피는 모른다.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런지.

다만 기억한다. 침묵. 담배. 복도 끝 조명. 그리고 아빠가 혼자서 벽을 바라보던 그 순간.

그 순간은 말 없이도 마음속 깊이 박혀 들어온다.

 

또 어느 날 밤, 카라오케 기계 앞에 서 있는 아빠. 그는 거절한다. "너 먼저 불러."

소피는 노래를 부른다

아빠는 눈을 내리깔고, 테이블 위를 문지른다. 아무 말이 없다.

소피는 그것이 자신 때문이 아닌 것을 안다.

그건, 아빠 안에 있는 무언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슬픔 같은 것.

 

캠코더가 다시 재생된다. 성인이 된 소피가 오래된 테이프를 다시 틀어본다. 흐릿한 화면.

하지만 그녀의 눈은 날카롭고 선명하다. 어린 시절의 그 웃음, 그 침묵, 그 밤의 감정을 되새긴다.

그 여름, 그 며칠은 너무 찬란했고, 동시에 너무 슬펐다.

그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가 그토록 애써서 숨기고자 했던 감정들을.

 

그날의 아빠는 춤을 춘다. 클럽 안, 빛과 음악, 소음 속에서.

그는 웃고 있지만 눈을 감는다. 소피는 손을 뻗지만 닿지 않는다.

그 장면은 꿈 같다. 혹은 기억의 파편.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다.

아빠의 뒷모습, 빛 속으로 사라지는 그림자.

그리고 성인이 된 소피가 그를 바라본다. 손끝이 떨린다.

 

그는 그 여름 이후 어떤 모습이었을까? 무엇을 견디고 있었을까?

소피는 이제 안다. 그가 남기고 간 것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었다는 걸.

그건 사랑이었다.

완전하지 않아 더 깊은, 꺼내면 아픈,

그러나 가장 소중한 사랑.

 

아버지와 딸이 함께 했던 짧은 여름.

그 안에는 온 세상이 있었다.

 

햇살과 수영장, 숨겨진 눈물, 말 없는 포옹, 흔들리는 어깨.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끝까지 이해하고자 했던 그 마음.

 

그것이 지금도 그녀 안에 남아, 그녀를 지탱하고 있다.

 

 

 

3. 특징

◐ 기억과 시간의 흐름을 섬세하게 다룬 구조

애프터썬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고, 기억의 흐름처럼 단편적이고 모호한 장면들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영화는 성인이 된 소피가 오래된 캠코더 영상을 돌려보며, 어린 시절의 여름휴가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죠.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감정의 파편처럼 흩어졌다가 이어지며 관객에게 천천히 스며듭니다.

 

◐  절제된 감정과 표현으로 더 깊은 울림 유도

영화는 큰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 없이, 일상의 디테일과 침묵 속의 감정에 집중합니다.

대사보다 시선, 행동, 조용한 틈새의 표정이 감정을 설명하고, 관객은 그 공백을 해석하며 인물의 내면에 천천히 다가가게 됩니다.

특히 아버지 캘럼의 우울과 슬픔은 명확하게 말로 드러나지 않기에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  오래된 비디오 촬영과 클럽 신 등 몽환적 연출

영화는 실제 캠코더로 촬영한 듯한 로파이 영상, 그리고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성인 소피의 댄스 클럽 환상 시퀀스를 통해 기억과 정서의 불분명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로 인해 영화는 사실적인 동시에 몽환적이며, 기억이라는 모호한 감정의 레이어를 시청각적으로 구현해냅니다.

 

◐  폴 메스칼과 프랭키 코리오의 뛰어난 연기

아버지 역을 맡은 폴 메스칼은 극도의 내면 연기를 통해, 겉으로는 다정하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는 젊은 아버지를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아역 배우 프랭키 코리오는 소피의 순수함과 관찰자적 감성을 오롯이 담아내며, 부녀의 복잡한 관계를 잊을 수 없는 케미로 완성해냅니다.

 

 

4. 총평

이 영화는 시간 속에서 기억이 흩어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직선적 서사가 아닌 감정 중심 회상체, 마치 소피의 눈으로 기억을 더듬으며 흐릿한 풍경과 잊히지 않는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영화는 잊고 있었던 감정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슬픔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며, ‘부재라는 형태의 애틋함이기도 하다.

영화는 아버지와 딸이 함께 보낸 단 몇 날의 여름을 보여줄 뿐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온 인생과 그 안에 담긴 말하지 못한 고통이 숨어 있다.

 

소피는 당시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성인이 되어 그 기억을 다시 돌아보며 비로소 깨닫는다.

왜 아버지는 밤마다 담배를 피웠는지, 왜 일부 순간엔 웃고 일부 순간엔 멀어졌는지.

영화는 그 깨달음의 과정을 말없이, 섬세하게, 음악과 시선, 공기 속의 정적을 통해 표현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관객은 알게 된다.

이 영화가 그저 과거를 회상하는 영화가 아니라, 한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그 여름은 다시 오지 않지만, 그 사랑은 시간 속 어딘가에서 여전히 반짝인다.

흐릿하고 바랜 영상처럼,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슬픔, 떠난 이가 남긴 체온,

그리고 사랑의 흔적을 따라가는 가장 조용하고도 강렬한 방식의 고백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사랑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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