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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랩소디

 

전쟁으로 이별한 연인 올레나와 올렉산드르가 음악과 기다림을 통해 다시 재회하는 이야기.

 

1. 영화 개요

제목 : 우크라이나 랩소디 (Ukrainian Rhapsody)

장르 : 드라마

감독 :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주연 : 올가 레우스 페트렌코, 에두아르드 코쉬만

개봉 : 1961년 , 우크라이나

 

2. 줄거리

흑백의 장면이 조용히 펼쳐진다.

화면에는 끝없는 밀밭과, 그 너머로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전운이 덮여 있다.

카메라는 한 마을의 풍경을 담는다. 풍요롭던 계절,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 수확이 끝난 들판 위로 전쟁의 소문이 퍼지고 있다.

낙엽이 지기 시작한 어느 가을날, 올레나는 마을 교회 앞에서 민속가곡을 부르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청명하고 따뜻하여, 아이부터 노인까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노래는 사랑하는 연인 올렉산드르를 위한 노래다.

 

올렉산드르는 젊은 광부이자, 마을에서 손꼽히는 성실한 청년이다.

그는 매일 새벽 어머니의 빵을 들고 일터로 나가며, 하루를 끝낸 저녁엔 올레나와 함께 언덕 너머의 바위에서 미래를 꿈꿨다.

전쟁이 우리를 비켜가길.”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하지만 그 소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라디오에서는 동부 전선의 긴급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이웃 마을 청년들이 하나둘 징집된다.

마침내, 올렉산드르에게도 징집영장이 도착한다. 올레나는 흐느끼며 그의 품에 안긴다.

그는 말없이, 그러나 굳건히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며 약속한다.

돌아올게. 어떤 일이 있어도.”

 

열차는 기적소리를 남기며 전선으로 향한다.

올렉산드르는 타지의 전장에서 온갖 고초를 겪는다. 전투 장면은 거의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총성이 울린 들판, 쓰러진 병사 위에 내리는 눈, 멀리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이 그의 고향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는 잠시 쪽지를 꺼낸다. 그 안엔 올레나가 남긴 악보가 있다.

그녀의 노래는 그를 다시 숨쉬게 만들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가혹하게 휘몰아간다.

적군의 급습 중, 그는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끌려간다.

얼어붙은 시베리아 근처, 혹독한 노동 속에서 그는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지만, 단 하나, 그녀의 노래만은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한편, 고향의 올레나는 그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전사자로 등록되었습니다.”

공식적인 통지서 한 장이 그녀의 세상을 산산이 부순다. 그녀는 침묵한다. 노래를 멈춘다.

마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마을에 울려 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언젠가 돌아올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이 흐른다. 마을도 변하고, 전쟁은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올레나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다.

어느 날, 올렉산드르와 함께 복무했던 병사가 마을을 찾는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는 죽지 않았어요. 마지막에 포로로 끌려간 걸 제가 봤습니다.”

 

올레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터지고, 심장이 다시 뛴다.

그가 살아 있을 수 있다면, 어디든 가겠어요.”

 

올레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폐허가 된 도시들을 지나고, 폭격 흔적이 남은 거리들을 건넌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를 부르며 정보를 얻는다. 전쟁 중 도망친 유대인 여성, 붉은 군복을 입은 노파, 아이를 잃은 어머니

그녀의 노래는 어디에서든 문을 열어주었고, 잊힌 진실들을 하나둘 꺼내게 만든다.

 

마침내 그녀는 시베리아 인근 포로수용소 목록에서 올렉산드르의 이름을 찾는다.

희망이 실체를 갖게 된 순간, 그녀는 그 수용소가 얼마 전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마지막 여정을 떠나고, 설산을 넘는다.

피범벅이 된 옷과 상처투성이의 발로, 그녀는 무너진 수용소 문 앞에 도착한다.

 

거기서, 그녀는 한 남자를 마주한다. 수염이 자라고, 눈빛이 메말랐지만바로 그였다. 올렉산드르.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그저 울기만 한다.

그녀도 말없이 그의 품에 안긴다.

당신을 믿었어요내 노래로 매일 불렀어요.”

 

 폐허가 된 마을 교회. 다시 돌아온 두 사람은, 전쟁 전처럼 노래를 시작한다.

배경은 여전히 회색빛이지만, 그 안에 희미하게 피어나는 봄의 향기.

그녀의 노래는 더는 개인의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이 땅의 슬픔과 생존, 희망을 껴안는 노래.

영화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난다.

 

미소도 눈물도 아닌,

기억과 존엄이 담긴 침묵의 표정으로.

 

 

 

 

 

3. 특징 

◐ 전쟁보다 사랑을 노래하는 시선

이 영화는 전쟁 영화이면서도, 총성과 전투보다 사랑, 기다림, 그리고 음악을 중심에 둡니다.

전쟁이 가져온 상실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그 안을 살아가는 개인의 감정과 운명, 기억이 진짜 이야기입니다.

총알이 아닌 편지, 전투가 아닌 노래, 죽음이 아닌 기다림이 이 작품을 이끕니다.

이런 접근은 당대 소련 영화로서는 보기 드문 인간 중심의 서사,

감독 파라자노프의 시적인 세계관을 보여 줍니다.

 

◐ 음악과 이미지, 정서의 유기적 결합

영화 속에서 음악은 인물의 감정과 사건을 이끄는 서사 도구로 작용합니다.

올레나의 민속가곡은 단순한 위안이 아닌 생존의 신호이자, 잊히지 않기 위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관객은 그 음악과 장면 사이에서,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추억과 상실의 정서에 빠져듭니다.

 

◐ 여성의 감정에 대한 존중

그녀의 행동은 극적으로 소란스럽지 않지만, 한 편의 시처럼 강렬하고,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감독은  남성적 영웅주의 대신, 여성의 감정, 기다림, 부드러움이 가진 힘을 믿습니다.

 

4. 총평

우크라이나 랩소디격정적이면서도 조용한, 서정시 같은 음악이다.

시대의 파편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이름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나눈 약속, 기다림, 침묵 속의 노래가 이 영화를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긴다.

 

파라자노프는 이 영화에서 

감정을 이미지화하고, 침묵을 음악으로 바꾸며, 전쟁의 폭력 속에서도 인간성과 예술의 의미를 담아냈다.

 

사랑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 끝까지 사랑을 지켜낸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그녀의 노래처럼 오래도록 메아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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