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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

 

아무도 준비되지 않은 상실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운명그러나 그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삶 이야기.

 

 

1. 영화 개요

제목 : 신의 손  (The Hand of God)

장르 : 드라마

감독 : 파올로 소렌티노

주연 : 토니 세르빌로, 테레사 사포난젤로, 루이자 라니에리

개봉 : 2021년, 이탈리아

2. 거리 

이야기는 198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다. 여름의 기운이 공기 중에 감돌고, 지중해 햇살은 도시의 골목을 노란빛으로 물들인다. 그곳에 사는 한 소년, *파비에토 스키사 * 는 인생의 결정적인 여름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정적이 깃든 신비한 분위기로 관객을 감싼다. 한 여인이 수도승과 대화를 나누며 마법처럼 도심 한복판을 걷고, 바로 그곳에서 파비에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파비에토의 가족은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하고 개성 넘친다. 아버지, 어머니, , 삼촌, 할머니, 이모까지 모두가 유쾌하고  생동감 넘친다. 특히 어머니 마리아는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파비에토에게 깊은 애정을 보여준다.

그들은 나폴리라는 도시의 혼란과 소란을 배경으로 하나의 성처럼 똘똘 뭉쳐 살아간다.

 

그러나 이 행복에는 어딘가 기묘한 불안이 깔려 있다. 파비에토는 주변 어른들의 세계를 조금씩 엿보기 시작한다.

이모는 정신질환을 앓고, 삼촌은 마피아에 연루된 듯한 암시를 남긴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성실하고 가정적인 인물이지만, 불륜을 저지르고 있으며,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다.

파비에토는 처음으로 어른의 세계가 아이가 보던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 해, 나폴리는 들썩인다. *디에고 마라도나의 SSC 나폴리 입단 소식*이 전해지면서 도시 전체가 흥분에 휩싸인다.

사람들은 축구 이야기를 하며 눈을 빛내고, 마라도나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닌 구세주처럼 받아들여진다.

파비에토 역시 마라도나에 매료된다.

그것은 단지 축구가 아니라, 삶이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희망이라는 이름의 불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마라도나의 존재는 이후 파비에토의 인생을 구하는 전환점이 된다.

영화 제목 신의 손(The Hand of God)’은 축구 경기의 유명한 사건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운명처럼 개입한 보이지 않는 손길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해맑고 따뜻하다. 그러나 중반부에 접어들며, 평화로운 일상은 급격하게 뒤틀린다.

부모님이 별장으로 여행을 떠난 날, 파비에토는 마라도나 경기를 보기 위해 홀로 집에 남는다. 그리고 그날 밤,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로 부모님은 둘 다 사망하게 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관객은 파비에토의 공허한 표정과 깨어진 가족사진, 묵직한 정적을 통해  삶의 균열이 얼마나 깊고도 날카롭게 들어왔는지를 느끼게 된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찬란했던 여름은 끝났고, 파비에토는 어린 시절의 끝자락에서 낯선 어른의 세계로 내던져진다.

갑작스럽게 부모를 잃은 상실감, 친척들의 위로 속에서도 다가오지 않는 현실감, 슬픔마저 실감 나지 않는 멍한 일상.

그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으로 침잠한다.

 

파비에토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누구도 그에게 진심으로 묻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는 한 영화감독과 마주하게 된다. 루카노 감독은 파비에토에게 묻는다.

당신은 인생을 진지하게 살 건가요, 아니면 그냥 지나가게 둘 건가요?”

 

그 질문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파비에토가 인생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자각의 시작이었다.

 

예술은 그에게 도피가 아니라, 상실을 언어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들고, 기억을 좇고, 고통을 견디며 성장한다.

영화 후반, 그는 혼자 열차를 타고 나폴리를 떠난다.

무너진 과거로부터 탈출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로 바꾸는 창작자가 되기 위한 길을 떠난 것이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마라도나였고, 부모의 죽음이었으며, 결국은 영화였다.

 

기차 안에서의 장면은 전환과 해방의 순간이자, 성인이 된다는 것의 아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삭임처럼 들리는 마라도나의 신의 손’.

그것은 축구공을 골대에 넣은 기적의 손이자, 파비에토의 인생을 미끄러지듯 구해낸 운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3. 특징

◐ 자전적 이야기의 섬세한 시적 재구성

이 영화는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의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을 기반으로 한 자전적 작품이다.

그는 어린 시절 나폴리에서 부모를 잃은 실제 경험을 영화 속 파비에토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서술 방식은 '날것의 회상'이 아니라, 시적이고 몽환적인 장면 구성과 절제된 감정으로 빚어낸 '정제된 기억의 재현'이다.

이런 구성 덕분에 영화는 비극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여운과 파편을 통해 관객의 감정에 조용히 스며든다.

 

◐ 나폴리라는 도시의 살아 있는 풍경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거리, 축구에 열광하는 시민들, 바다와 골목길, 정오의 햇살 속에 내리쬐는 먼지. 도시의 공기, 소리, 냄새, 정서까지도 필름 위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나폴리는 배경을 넘어 등장인물처럼 살아 숨 쉬는 존재로 기능하며, 주인공의 감정선을 한층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 인생의 이면을 담아낸 장면 설계

소렌티노는 주로 삶과 죽음, 경쾌함과 비극, 진실과 환상을 동시에 보여주는 감독이다.

어이없는 유머가 오가는 가족 식사 장면 뒤에 갑작스러운 상실이 닥치고, 환상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등장이 현실적인 외로움과 맞물려 등장한다.

이 영화는 일관된 톤보다는,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리듬을 따르며 전개되는데, 그 속에서 인물은 진짜 인간으로 살아 숨 쉬고,, 인생은 그 자체로 납득되지 않지만 아름답게 느껴진다.

 

◐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영화적 선언

이 영화는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한 소년의 탄생 이야기.

영화 후반, 파비에토는 스스로 묻는다. “이 고통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결국 영화라는 형식을 택한다.

감독 소렌티노는 이 영화를 통해 예술이 고통을 해석하고, 슬픔을 이야기로 바꾸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전한다.

 

 

4. 총평 

파비에토는 가족을 잃고, 세상에서 가장 아픈 상처를 겪지만,  고통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고, 자신을 구원할 새로운 언어를 찾아간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부모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스크린 위에 조용하지만 뜨겁게 풀어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를 마주 보게 만든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슬픔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위에 삶을 다시 세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다.

비극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황망함과 그 너머의 나아가려는 몸짓을 담담히 그려낸다.

 

삶은 우리에게 설명되지 않은 슬픔을 안기지만, 때론 축구처럼 예기치 않은 손길이, 카메라처럼 프레임 하나가, 대사 한 줄이 살아갈 이유를 남겨준다.

우리 인생도 종종 불공정하고, 예측 불가하고, 놀랍게 구원되기도 한다.

 

삶은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견디고, 사랑하며 살아갈 뿐이다.

 

신의 손』은 말한다.

"세상은 너를 아프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도 너만의 이야기를 써라. 그리고 계속 나아가라."

 

당신은 쓰러졌지만,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소렌티노는 그 손을 조용히 내밀었고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그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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